아이가 범죄를 저질렀다.
시작은 흔하디 흔한 장난에서 시작했지만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는 소설을 많이 봐서일까.
나에게는 아이의 행동이 범죄라고 생각됐다.
몇일 전 코로나로 지친 아이들을 위해 내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마다 가족끼리 산책을 가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얘깃거리마저 떨어진 어느날 저녁
공터에서 발야구를 했다.
아들 둘과, 남편, 나까지 4인이 돌아가며 공격을 하고 수비를 하려니 벅찼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그 다음날은 큰 아이의 친구들 5학년 쪼무라기들을 잔뜩 끌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고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친구들을 끌어모았다.
엄마들은 당연히 너무도 좋아했다.
저녁을 먹고 7시 동네 어귀에서 만나기로 하고
코로나로 유행한다는 비움 실천을 다부지게 시행하고
버릴 옷더미를 산더미처럼 끌어모아
아이둘과 나눠 내려갈때였다.
같은 통로 아래층에 사는 언니의 전화였다.
잠깐 1층에서 볼 수 있냐는 얘기였다.
간혹 옥수수며 감자며 시골에서 올라온 채소들을 주던
좋은 언니였기에
무엇을 또 주시려고 하나..하는 생각에
의심없이 아이들과 내려갔는데
사뭇 언니의 표정이 엄숙했다.
“아이들과 따로 얘기좀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어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언니는 이틀전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낙서를 해놨는데
자기 호수를 써놓았다며
혹시 학교에 아이 친구가 자기 아이를 놀리려고 한걸까
걱정이 돼서 씨씨티비를 봤는데
우리아이들이 낙서를 해 놨더라고...
말을 해줘야할 것 같아서.
장난이긴 하겠지만 엄마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낙서의 내용은
‘나는 되지(심지어 맞춤법도 틀렸다). 나는 444호(가상의 호수)에 산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큰일났다.
아이에게 전화를 해 빨리 오라고 했다.
너 아래층 이모에게 잘못한일 없어?
아이는 전혀 아니라며, 태연했다.
아이를 불러세우고 낙서의 출처를 묻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낙서가 하고 싶어서 했는데
아래층 형 생각은 못했다고 내가 아니라고 하려고 아무 호수나 적었다는
아이의 말에 실소가 나왔지만
문제는 아이의 태도였다.
“씨씨티비를 보고 경찰에 신고를 했고
신고를 취소하려면 니가 사과해야해“
라고 겁을 줘서 였을까
아이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묵묵부답이었다.
아래층 언니는 평소의 내 아이라면 울며 불며 사과할 거라고 생각했다가
아이가 묵묵부답으로 서 있는 모습에 조금 화가나 보였다.
아이에게 이건 잘못한 거야. 너라서 봐주는거야...라며 훈계를
하곤 자리를 떴다.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어떻게 혼내야 하지.
덜큰 어른인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어렵다.
누군가가 정답을 알려준다면 좋을 텐데.
짧은 순간이지만 한가지를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의 사용물에 낙서를 한 것은 범죄행위다’
“지금 아래층 이모가 경찰에 신고를 해서 씨씨티비를 확인했어.
이미 신고가 들어갔기 때문에 너는 범죄를 저지른거야.
니가 제대로 사과했다면 이모가 취소했을텐데.
이젠 우리가 가서 설명해야해.
경찰서에 가자.“
아이는 막무가내로 잡아끄는 나를 잡아끌고 지루한 실갱이가 시작됐다.
나는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쳐줘야 할 것 같았다.
의미없는 장난이 얼마나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장난을 치고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한참 실갱이 끝에 아이를 때리기도 했고
아이는 울기도 했고...
아이에게 경찰서에 가서 자기의 잘못을 직접 말하고 용서를 구하던지
아니면 1층에서 같은 통로 주민들에게 준 피해를 사과하라고 했다.
코로나니까 스케치북에
“엘레베이터에 낙서를 한 아이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써서 들고 있으라고 했다.
모두 싫다는 아이. 당연하지.
실갱이 끝에 나와 함께 일층에서 사과를 하기로 했다
너를 잘못 키워 이런일이 생겼으니 내가 같이 사죄해야지.
그리고 1층에서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엘레베이터에 낙서를 한 아이 엄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니가 큰 소리로 사과하면 그때 멈출 거야
아이는 울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한 30대 후반의 남자가 지나갔다.
나를 가만히 부르더니
“어머니 의도는 알겠지만 아이가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으니 올라가시죠”
하고 권유했다.
요새같은 세상에, 남일에 참견하기 싫어하는 세상에
그 참견이 고마웠다.
“소란 피워 죄송해요. 아이가 당사자에게 사과하는 태도가 좋지 못해
크게 혼내야 할 것 같아..그래서 서있습니다.
당사자에게 제대로 사과하게 하려구요“
그 남자분은 “그렇다면제가 주제넘었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던 사이 444호의 아이 아버지가 퇴근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를 바로 세우고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낙서했어요.
정말로 너무 죄송합니다.“
말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창피했고.
아이가 왜 이렇게 컸을까....
일하는 엄마라서 그럴까.
고정 레파토리가 머릿속을 헤짚으며 눈물이 새어나왔다.
444호 아버지는 너무 당황하며 아니라고 손사례를 치셨다.
평소에도 좋으신 그분은 아니라며, 괜찮다며
내 아이를 토닥이고 올라갔다.
그런데 아까 나에게 권유를 했던 30대 남자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통로 한쪽에 서있다가 다가왔다.
그리곤 짐짓 허리춤에 손을 언고 화난 표정으로
아이를 나무랬다.
“너 임마 그렇게 낙서하고 그라면 안돼, 어깨 피고 싸나이는 어깨피고 제대로 대답하는거야.
아저씨랑 약속하자. 이제 다시는 그라면 안돼. 그라면 아저씨가 혼내줄거야.
그라고 임마, 니가 이래 해서 니 어무이가 이래 서가꼬
사과를 하고 그러는게 더 죄송한거야. 알겠어?
진짜 다시는 그라면 안돼.“
건장한 어른의 훈계에 내 아이는 연신 울면서도 다부지게 큰 소리로
‘네’하고 대답했다.
고마웠다. 이같은 세상에
남의일에 신경써줘서 고마웠다.
내 아이가 이것이 엄마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혼날 잘못이라는 것을 알려줘서 고마웠다.
예전에는 한 아이를 마을이 키운다고 했다.
마을 어귀의 어르신이 아이의 품행을 나무라고
구멍가게 할머니가 아이의 씀씀이를 나무라고
곰방대를 물고 계신 할아버지가 아이의 인사성을 나무라며
키웠지만
지금은 모두 ‘남’이라고 부른다.
새삼 이 관심이 고맙고 참견이 감사했다.
그렇게 그날의 일은 마무리가 됐다.
그날나를 통로에서 본 아파트 주민들은
미친 여자라고, 신고하고싶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예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아이를 제대로 나무란다고 했을수도 있다.
그러나...무엇이 정답일까.
나는 내 아이에게 정말로 너를 사랑하고
너의 잘못은 나의 잘못이며
공공의 장소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모두에게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데 무엇이 정답일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