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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 100년을 살아본 사람

by 장용범

사람이 멀쩡한 정신으로 100년을 살게되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쓴 김형석 교수의 대담 내용을 들으며 은퇴후 삶과 나이들면서 노인이 된다는 것에 시사점이 있어 정리를 해두고 싶었다.

1. 내가 나를 믿을만 할 때가 철이 드는 나이다.

주변에는 철없는 노인들도 많은걸 보면 나이드는 것과 철드는 것이 꼭 일치하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철이 드는 기준을 ‘내가 나를 믿을만 할 때’라고 하는데 60세 정도가 되니 그게 좀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믿음의 대표적인 것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은 지켜가는 것. 그게 비록 나와의 약속일지라도.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켜나갈 때 그때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철드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약한 나외의 약속은 ‘금주’인 것 같다. 아직 철이 좀 더 들어야 할까 보다.

2. 행복하기 위해 사는게 아니라 살다 보면 행복해 지는 것이더라.

행복을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인 것 같지만 행복은 추구해서 얻어 지는게 아니다. 살다보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손님같은 행복한 느낌들. 그것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감을 누리는 방법이다. 행복은 강도(強度)보다 빈도라는 말도 있듯이 행복하고 싶으면 지금 바로 행복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한 행복의 조건일 것 같다.

3.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한다.

나이 100세가 넘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어른은 책 읽고 글쓰고 사색하는 것을 주로 한다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좀 거리가 있는 얘기다. 하지만 나의 은퇴 후 누리고자 하는 방향과는 사뭇 닮은 면이 있다. 100세를 넘겨 돌아보니 75세까지는 계속 성장하는 시기였다고 하신다. 우리는 일이라 하면 바로 돈이라 생각한다. 현실성 없이 들릴지 몰라도 일과 돈을 연결짓지 않으면 세상에 할 일이 정말 많긴 하다. 진정한 노동해방은 ‘일의 놀이화’라던 법륜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돈을 받고 하면 ‘일’, 돈을 내고 하면 ‘놀이’ 라고 한다. 은퇴 이후의 나이에 돈을 받고 할 수 있는 일을 얼마나 찾을수 있을까 싶다. 그럴바엔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놀이로써의 일을 하는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돈 안주면 일 안한다는 생각만 버리면 된다. 엘빈 토플러는 자원봉사를 미래의 일자리라고 했는데 일은 곧 돈이라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면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돈 받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은퇴자에게는 자원봉사는 괜찮은 일자리인 것이 사실이다.

4. 60세부터 75세까지가 인생의 황금기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공감되는 부분이다. 이 나이대에는 아이들은 독립을 하고 나의 건강도 그럭저럭 괜찮을 시기이다. 회사에서 은퇴를 했으니 어디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청년취업이 어려워 아이들의 독립시기가 늦춰지고 부모와 함께 사는 시기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부모가 여건이 된다면야 이 부분도 도와주겠지만 할 수 없는 것에 걱정 한들 어찌 하겠나. 마음이나마 편하게 지내야지.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지만 엄연히 독립된 인격체이고 20세가 넘은 성인이라면 각자의 인생이라고 보는 것이 건전한 관계 같다. 나의 경우에는 이 시기도 둘로 나누고 싶다. 에너지가 좀 더 왕성한 시기인 65세까지를 1기, 그후 75세까지는 2기로 나누어 1기에는 좀 더 역동적인 것을 할 수도 있겠다. 그 어른은 60세 이후를 ‘사회속에 다시 태어나는 개인’이라고했다. 그전에는 어디에 소속되어 지냈다면 60세부터는 개인의 자격으로 사회에 다시 진출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5. 늙고 안 늙고는 내 마음에 달렸다.

‘남이 나를 늙은이 취급 하는 것이지 내가 늙는게 아니다. 물리적인 나이나 보이는 신체가 늙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정신적 나이는 내 마음에 달렸다.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면 늙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 또 그런 것이다. 장수 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욕심이 없고 남을 욕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성품을 가졌더라.’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 나이 80이 되면 산에 누워 있거나 안방에 누워 있거나 똑같다는 말이다. 이 말은 죽어서 묘지안에 있거나 살아서 안방에 있거나 다를바 없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었는데 욕심이 가득한 노인들은 어쩐지 좀 불쌍해 보인다. 삶을 정리하는 시기에 인생을 좀 관조하며 후생들을 격려하고 도와주며 보내도 되는데 마지막까지 돈이나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은 한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 나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았다. 2016년 자신의 형과 상속분쟁이 한창일때 뉴스에 비친 화를 내던 그의 모습이다.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 아버지가 ‘맹희는 내 자식이 아니다’ 하고 내제꼈다.” 지킬 것이 참 많은 노인같아 보였다. 그후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후 오랜 기간을 코마상태에서 살다 갔다.

올해 102세인 김형석 교수는 윤동주 시인이나 김수환 추기경과 동기라고 한다. 100년을 넘긴 한 인간이 후생들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50대 중반인 내가 걸어갈 생에 대한 좋은 지침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