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범 Feb 01. 2021

080. 아는 놈이 무섭다

‘안다’는 것이 단순히 ‘안다’는 사실에만 머물고 세상이나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지식인은 지독한 회의에 빠져 든다.

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분업체계에서 의식주의 기본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공동체 내의 지위는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농사를 짓거나 추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삶은 대부분 고달픈 일상들이지만 그들의 소득이나 사회적 입지면에서 그 공동체의 주축이 되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그 활동을 좀 더 효율적으로 영위하게끔 도구를 만들어낸 사람들과 상인들이 더 많은 부를 누리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을 누린 것 같다. 그리보면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아버지의 소를 판 돈을 훔쳐 서울로 달아나 사업의 기회를 잡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공동체는 또한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그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군대나 경찰 등 물리적 강제력을 가지기도 한다. 그들이 늘 반복해서 훈련하고 준비하는 일은 상대를 파괴하고 죽이는 일이다. 그것이 군인의 소총 사격이 되었건 항공모함이나 전투기의 형태를 띠든 그들의 주된 일은 당장 써먹는 일은 아니다. 이들 군사력이나 경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한다. 지금 아무리 평화시대라고 해도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를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 그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참 불운한 편인데 분단과 반도라는 지리적 입지로 늘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이는 세계 6위의 국방력을 유지하는 결과를 내었다. 강한 국방력을 자랑으로 여겨야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많은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 불리한 여건을 가진 셈이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내 입지는 어떠할까? 한 때는 육사를 최고의 엘리트 출세 코스로 쳐준 적도 있었다. 당시 군사정권은 양복을 입은 군인들이 권력을 쥐던 시절이었다. 유신 사무관이라 하여 대위로 전역하면 행정고시를 합격한 5급 공무원의 직급을 주기도 한 시대였다.

지금은 시대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회적으로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규칙을 정하는 힘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왜 본사가 지사보다 힘이 있는가.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법조인이나 국회의원의 힘은 또 어디서 나오는가. 역시 규칙을 다루는데서 나온다. 공동체 내의 최고 지위는 결국 규칙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국가의 규칙을 법이라 하고 공동체 내 상위계층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그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었다. 삼성의 이재용이라는 돈 많은 사람을 감옥에 넣는 힘도 그 법이라는 것에서 나왔다. 시대에 따라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이 세습적인 왕에서 선거로 뽑는 방식으로 달라졌을 뿐 공동체에서는 규칙을 정하고 집행하는 이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갔던 것이다.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소위 지식인들이 많다. 최근 우리의 문제는 대학을 졸업한 이들 지식인들이 넘쳐나면서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일자리를 줄 수 없다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이와 비슷한 시기가 여럿 있었다. 조선 건국의 핵심 세력은 신진사대부였다. 지방 향리 출신 자제들이었던 그들은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는 진출했지만 신분이 귀족은 아니었기에 출세에는 제약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고려라는 기존의 판을 뒤집어엎는 것이었다.

촛불 혁명의 단초를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20대 이상의 국민 대부분이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할 정도로 똑똑해진 나라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형평성이다. 그들에게는 재벌이 구입해준 말을 타고 명문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지식인들이 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없을 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하나는 조선 건국처럼 기존의 판을 엎어버리는 주동 세력이 되거나 아니면 일제시대 일본 유학이나 대학을 나온 지식인들처럼 식민지 조선인에게는 막힌 출세길에 좌절하며 사회에서 겉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손에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지는 않는다. 코로나 시대가 깊어질수록 지식인들의 정서를 관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는 것 같다. 핵심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에게 고함
뭐든지 시도하십시오. 실패해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본 생활은 국가가 보장하겠습니다. 적어도 이 정도가 되어야 나라의 활력이 살아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079. 100년을 살아본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