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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Feb 03. 2021

082. 그게 돈이 돼?

오랜만에 선배님을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  분과의 인연은 업무적으로 만난 시절 인연이었지만 서로 마음이 통해 종종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50 중후반인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레 은퇴 후의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글쓰기에 대한 나의 계획을 들으시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그게 돈이 되냐고 물으셨다. 내가 웃으며 “사람이  되는 일만 하는  아니죠라고 하니 멋쩍어하신다. 사실 글쓰기로 돈을 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그게 돈이 되느냐 아니냐로 결정한다.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정말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좋아서라고 한다. 나의 글쓰기도 그냥 좋아서 하는 엉뚱한 짓일 거다. 

어떤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는 그에 투입된 노동의 양에 좌우된다는 것이 노동 가치설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가난은 자본가가 이윤을 중간에서 가로채기 때문이라며  현상이 깊어지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노동 가치설에 따르면 장시간 글을 쓰는 작가는 상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만은 않으니 크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산업계에서도 자동화에 따른 노동인구의 감소는 시장가치의 결정요소에서 노동이 점점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글의 시장가치는 어떻게 결정될까? 결국  글을 구입하는 소비자에 의해 결정된다. 글이라는 콘텐츠가 담긴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비용을 얼마나 지불하느냐에 따라 글의 시장가치가 정해질 것이다. 이는 한계효용 학파의 주장이기도 한데 시장 가격은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면 시장가치가 없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인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그렇다. 이중섭이나 고흐는 살아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화가들이었다. 한계효용 학파의 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시장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행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림을 계속 그렸는데 사람이  시장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나마 고흐나 이중섭처럼 사후에 인정이라도 받으면 다행인데 대부분의 화가들은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시장가치라는 것은 대중의 인정여부에 달려 있다. 돈이 되느냐는 시장가치의 문제이고 이는  대중의 인정을 받을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게  허망하다. 사람들은 내가  보이고 싶다고  봐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현실적인 방법을 택하는 게 좋아 보인다. 사람들의 인정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거다. 자기 긍정과 자기 신뢰를 가지고 하루하루 성장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보는 거다. 비록 조용히 사라지는 무명의 화가가 될지라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행복할 테니까. 어쩐지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내적으로 단단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든다. 내가 지금 처한 환경에서 내가   있는 것을 찾아  나간다는 마음 이것이  수처작주(隨處作主)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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