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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Feb 07. 2021

086. 못 알아 듣겠네요

‘팅 부동’은 못알아 듣겠다는 뜻의 중국말이다. 이 말을 들을때면 2006년의 내 모습이 생각난다. 당시 지방에 근무하던 나는 어느날 본사의 문서 한 장을 접하게 되었다. ‘중국 현지 전문가 파견 과정 모집’ 이었다. 대개 이런 문서들은 그 나라 언어를 어느정도 구사하는 사람을 모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문서 어디를 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당시는 아직 중국어가 그리 보편화되지 않아 사내에서 중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 드문 여건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 문서를 보니 2단계로 나누어진 프로그램이었는데 1단계는 중앙대 대학원에서 운영하는 중국경제 전문가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2단계는 중국어 시험을 치러 합격한 이를 대상으로 중국에 파견하여 현지 사정을 파악케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 확 끌렸기에 별도의 지원서 외에 내가 꼭 선발되어야 할 이유를 어필하는 장문의 메일을 인사부장에게 보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인사부에 근무하던 내 동기에게 부장이 나를 언급했다고 한다. 웬지 분위기가 좋다고 여기던 즈음 그 과정에 선발되었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 나중에 합격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대부분이 중문과 전공자들이었는데 내가 선발된 것은 특이한 경우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간 나는 경남에서 서울까지 매주 한 차례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올라왔고 6개월 후에 있을 중국어 시험 준비를 병행해야 했다. 문제는 나는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데 내가 살던 지역에는 중국어 학원조차 없다는 거였다. 책을 한 권 구입해 독학을 하다시피 하는데 대학원 과정이 거의 끝날 즈음 지역에 중국어 학원이 하나 생겼다. 일단 등록을 하고 수업은 들었지만 HSK 시험일은 다가오고 실력은 도통 늘지 않았다. 시험결과는 보기 좋게 탈락이었다. 회사에서는 그런 몇몇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원어민 인터뷰 과정이라는 기회를 다시 주었다. 마음은 급하고 실력은 없던 내가 인터뷰를 준비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글로 적고 그것을 학원 선생을 통해 중국어로 번역하는 것 그리고 그 중국어를 한글로 음을 달아 통째로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마침내 서울 강남의 공자아카데미라는 곳에 인터뷰를 보러 갔다. 나는 인터뷰 자리에서 먼저 드릴 말씀이 있다며 질문도 나오기 전에 내가 외웠던 그 문장들을 줄줄 외워댔다. 면접관은 나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원어민의 질문들은 내가 답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는 계속 “팅부동” 이라고만 했고 결과는 역시 탈락. 결과적으로 나는 현지 파견 없이 대학원 과정만 수료하는 것으로 끝을 냈다.

비록 중국어 실력 부족으로 현지파견은 못갔지만 6개월간 서울과 지방을 오갔던 대학원 과정은 이후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무엇보다 서울에 올라와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고 중국과 중국어를 공부하게 했으며 당시 수업을 함께 듣던 감사원이나 금감원 등 다른 기관에서 위탁교육 오신분들과의 좋은 인연도 맺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견인력 선발과 인터뷰 과정을 준비하며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더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까짓거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을 거다. 중국어는 그후로도 계속 공부하여 나중에는 가족들을 이끌고 자유여행을 다녀올 수준은 되었지만 ‘팅부동’이란 말을 들을 때면 당시 얼굴에 철판깔고 인터뷰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절로 웃음이 날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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