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범 Feb 13. 2021

092. 휴일한담(休日閑談)

가운데 중(中), 마음 심(心), 그래서 중심(中心)이다. 마음의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가운데라는 것은 치우침이 없다는 것이니 마음이 어딘가에 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범부중생은 이 중심을 잡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 늘 오감(五感)에 휘둘리고 생각(義)에 사로잡히다 보니 어딘가에 치우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설 연휴 이틀을 회사에 나갔다. 회사의 큰 전산작업이 설날 연휴 중에 있다 보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각 부서에서 한 명씩은 나와야 한다는 IT부서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도 회사에서 가깝고 고향에도 내려가지 않아 그냥 내가 나오기로 했다. 할 일 없이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평일 같으면 직원들이 출근해서 각자의 업무에 바빴을 공간이지만 휴일 그들의 빈자리를 보니 새삼 공간을 활력 있게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잠도 자고 책도 뒤적이고 낙서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스스로 드는 생각이 나는 참 혼자서도 잘 노는구나 싶었다. 하루가 금방 지날 만큼 스스로에게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가운데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잡아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그러다 문득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라 하여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입장인데 ‘나’라고 할 것도 없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치가 그런데도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라도 가만있지 못하고 계획을 세우고 자원을 투입하여 결과를 지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행함의 주체가 없다고 보면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게 답이겠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에 따르면 1,2단계는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로 살아있는 생명체로써의 나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3,4단계는 사회적 욕구와 인정의 욕구로써 사람들 속에서 사랑받고 관계를 맺으며 인정받고자 한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특히 인정의 욕구는 사회가 안정되고 내 생활이 편안하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강렬한 욕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5단계인 자아실현이라 함은 좀 이상한 욕구이다. 대체 자아실현이란 게 무얼까. 예수나 싯다르타처럼 위대한 성인이라도 되고자 하는 욕구인가. ‘자아’를 실현한다고 하는데 나라고 할 것도 없는 무아(無我)이니 실현할 것도 없이 그대로도 괜찮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자아실현이 아닐까 하는 멋대로의 상상을 해 보았다.  

설날 연휴 혼자 사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편안한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니 어느덧 이틀이 후딱 지나갔다. 이 조용한 사색의 시간들이 좋았다.

작가의 이전글 091. 사람들이 과연 믿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