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라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미래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그중 하나는 반드시 다가오는 확정적 미래이다. 오늘 해가 지면 내일은 해가 뜬다. 봄이 지나면 여름, 가을, 겨울이 순차적으로 온다거나 모든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늙어가고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는 등 세상에는 확정적 미래가 꽤 많다. 또 하나는 선택적 미래이다.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달라지는 경우이다. 개인에게는 점심메뉴의 선택부터 배우자나 직업의 선택 등이 있을 수 있겠고 기업이나 국가에는 새로운 사업의 진출이나 경제정책의 수립 등이 있을 수 있다. 금번 코로나 사태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미래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면이 있다. 확정적 미래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 같은 것이지만 선택적 미래는 나의 선택이 미래의 결과를 좌우하다 보니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더 나은 선택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가성비가 좋은 것을 말한다. 노력은 적게 들이고 보상은 많이 돌아오는 그런 일을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내가 주민센터의 창구에서 민원서류 발급일을 하고 있는데 연봉 10억 수준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좀 이상한 거다. 우리는 가성비가 좋은 선택지를 가지려 하지만 어느 정도 심리적 수용선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이런 심리적 수용선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풍부해진 화폐 유동성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벼락부자, 벼락 거지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빈부격차가 사회적 문제였는데 이제는 같은 돈으로 전세를 살았는가 아파트를 소유했는가에 따라 평생 넘지 못할 벽이 생겨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서서히 드러난 게 아니라 코로나라는 상황이 되자 불과 1년 사이에 격차가 급격히 벌어진데 있다. 엊그제까지 너와 나는 비슷하게 가고 있었는데 불과 1년 만에 상대는 까마득히 멀리 가버려 뒷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내가 오늘 달릴 마음이 생기겠는가. 괜히 이상한 부동산 정책 내놓은 정부를 탓하기도 한다. 코로나 이후 K자 성장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내가 K자의 올라가는 선이 아닌 떨어지는 선에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제 코로나 상황이 끝나더라도 사회 전반에 심리적 불안요인은 상당 부분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택적 미래는 그 결과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게 지금까지의 양상이었다. 하지만 지난 코로나 1년은 그 모든 상식을 바꿔버렸다. 피드백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진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의 결과가 너무도 가혹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시간이 한참 지나야 잠잠해질 전망이다. 불과 1년 전 코로나 초기를 복기해 본다. 전 세계가 초유의 기본소득 개념까지 도입하며 돈을 거의 무제한으로 찍어낼 때 우리는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돈을 저토록 찍어대니 앞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자산가치가 올라가겠구나. 그럼 나는 뭘 해야 하지.’ 이게 불과 1년 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