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블로그에 매일 글쓰기 600일째 되는 날이다. 그래 여기까지 참 잘 왔다고 스스로에게 토닥거려 주자. 내 인생에서 스스로 결정한 일을 600일 동안 계속 이어왔던 것도 드문 일이니까. 무엇보다 글쓰기 600일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소중한 나의 자산이 되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저자인 김민식 PD의 공개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MBC에서 노조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전출되어 하루하루 무너져 내릴 때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세상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가장 되기 쉬운 직업이라고 했다. 글을 써서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기만 하면 되니 이보다 쉬운 직업이 어디 있겠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글을 써서 올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지속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글쓰기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나의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가능한 것 같다. 혼자만의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면 독자는 글쓰기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그 독자들을 내가 선정하는 게 좋다. 이왕이면 나와 긍정적인 관계로 맺어진 분들을 선정하는데 여기서 가족은 예외이다. 생활을 함께 하는 가족들에게 매일 글을 써서 보내기에는 의무감이 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장동료들도 배제하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각별한 사이가 아니라면 직장동료들에게 업무가 아닌 다른 일로 오르내리는 것은 득 보다 실이 많은 법이다. 이것은 내가 일찍이 경험했던 바였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나의 글을 SNS 등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예외적으로 직장동료들에게 알려도 무방한 글쓰기가 있긴 하다. 바로 업무와 관련된 글이나 책 쓰기이다. 나에게도 업무와 관련된 책 쓰기 계획은 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언젠가 쓰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직장생활 30년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그간 경험하고 익힌 것을 책으로 엮고 싶다.
지난 600일 동안 글쓰기를 통해 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참 많이 겪었다. 비록 직장생활은 퇴사를 고민할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던 시기였지만 그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아 준 것이 글쓰기였다. 그리고 은퇴 후의 삶을 공부하고 여행하는 작가로 살겠다는 계획까지 세웠으니 이보다 더 큰 소득이 있을까. 30여 년 직장생활을 통해 은퇴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제적 여건은 될 것 같으니 작가라는 직업적 선택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세상이 달라지다 보니 글을 써서 책을 내는데도 무료이고 휴대폰 하나로도 강의를 만들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상을 올리는 일도 가능하다. 그것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공짜이니 이건 완전 신세계이다. 나는 콘텐츠만 만들면 된다. 예전에 이런 계획을 어느 선배에게 말했을 때 그게 돈이 되겠냐고 물었다. 사실 이건 나에게 놀이지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인생 후반전을 재미나게 놀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기껏 100년을 살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몸은 비록 사라지더라도 1,000년을 살 수 있는 것이 글쓰기인 것 같다. 수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200년 되었다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본 적이 있다. 감동이었다. 나는 혜초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1,200년 전 그가 남긴 글을 통해 그와 나는 시간을 건너뛰어 서로 통했다. 사람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글로 표현되면 시공을 초월해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 여정을 즐기며 쓰기의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 중이다. 글이란 인간의 생각이라는 무형의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하는 멋진 수단이다. 내 머릿속의 생각이 눈앞에서 한 자씩 나타나는 게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글쓰기는 이처럼 재미난 놀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