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범 Feb 21. 2021

100. 강력한 허구의 세계

부자라는 사람은 지금 지갑에 현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부동산이나 은행 예금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부자는 나는 부자라는 마음의 상태이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 문제로 위축이 든다 싶은 사람에게 부자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약간의 심리적 트릭이 있다. 수중에 현금이든 수표든  100만 원 정도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면 부자라는 심리적 여유가 생겨   당당한 상태에서 상대를 대하게 된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호건 / 예술가>

사람은 자신이 상상하는 만큼 살아낼  있는 존재일 것이다. 상상의 세계는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머리나 마음속에 있는 허구의 세계이다. 그런데  허구의 세계가 실재를 지배한다. 시장에 가니 할머니가 직접  산나물이라며 바구니에 담아 팔고 있다. 얼마냐고 물으니 3,000원이라고 한다. 나는 1,000원이라고 인쇄된 종이  장을 꺼내어 주고  할머니가 산을 누비며 캤다고 하는 산나물을 산다. 이것은 돈이라는 상징성 있는 종이를 주고 할머니가 산에서 직접  산나물을 구입한 것으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허구의 세계가 실재의 세계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바나나를 가지고 있는 침팬지에게 3,000원을 준다고 침팬지가 나에게 바나나를   만무하다. 이처럼 상상의 세계나 허구의 세계는 인간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허구의 세계로 인해 실재가 고통을 받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 모두가 어렵다고 한다.  어려움은 결국 경제적 어려움이다. 거리두기라는 조치는 사람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정말 치명적일  같다. 또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전세 사는 가정의 불화도 상당한  같다. 집을 소유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1 사이에 벼락부자와 벼락거지로 갈렸으니 이해도 된다. 그런데 정말 이럴 때일수록 허구의 세계와 실재의 세계를  구분해야겠다. 허구의 세계는 고통을 받지 않지만 실재의 세계는 고통을 받는다. 기업은 어려워도 고통이 없지만  안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실직하면 당장 생활고에 시달린다. 여기서 기업은 허구의 세계이고 노동자의 삶은 실재이다. 최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에게 의사면허 취소를 하겠다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의사협회는 총파업을 예고하며 코로나 백신 접종에 협조 안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뭣이 중헌디?’라고 묻는다면 언제나 고통받는 실재의 세계가  중하다. 정부의 정책이든 개인의 마음가짐이든 실재 세계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가야   같다. 허구의 세계는 고통이 없다. 고통은 언제나 실재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작가의 이전글 099. 글쓰기에 빠져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