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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Feb 22. 2021

101. 자유, 빈 들녁의 바람

자유라는 단어를 들으면 바다위의 나는 새를 연상하거나 가없는 하늘을 떠올리게 된다. 인간이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욕망일 것이다. 누구도 노예적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현실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상당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투자를  때도 복잡한 주식 그래프를 분석하느니 경제 방송에서 고수들이 추천하는 종목을 따라 매수하는게 편하고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이 올라 주택구입이 부담스러우면 그냥 정부에서 나서서  국민들에게 공급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삶이 고달프니 종교에 귀의해 현실도피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에서 대중은 노예의 길로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는데 실제로 자유가 주어져도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없는 이들에게는 누군가  대신 부담스런 결정들을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체제가 다른 세계에 살았던 탈북민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한다. 자유란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에 대해서 책임도   있는 성숙함을 갖춘 사람이 온전히 누릴  있는 권리이다.

독립된 개체로서 자유를 느꼈던  번의 순간이 있다.  번째는 내가 부모에게서 벗어나 독립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순간이다. 졸업  군에 입대해 소위 월급이 처음 통장에 들어왔을때 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실감했었다. 성년이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여전히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번째는 취업을 했을 때였다. 나는 지방의 낯선 곳에 발령받아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었다. 그때는 내가 나고 자랐던 곳에서 완전히 벗어나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떨림이 있었던  같다. 그리고 해를 거듭  수록 사회인으로서 누리는 자유는 책임도  뒤따름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의 자유를 제어하는 능력도 생겼던  같다.

자유, 특히 선택의 자유를 누릴때  가지 염두에 두어야  일이 있다. 첫째,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다. 애당초 책임지지 못하겠다면 하지 않는게 좋다. 이는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선택은 내가 한다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사실 갈등이 많은 순간이다. 더구나 중요한 선택이라면 아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도 고민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선택권을 남에게 넘기면 안된다. 그가 아무리 전문가이고 경험이 많다고 해도 나의 선택권은 내가 행사해야 한다.  그럴까. 선택권을 남에게 넘기면 나는 점점 그에게 종속되어가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그의 조언을 수용하고 말고는 나의 선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전문가가  하나만은 아닐테지라는 다소 여유로운 자세로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야한다.

자유는 정말 좋은 것이지만  책임이 따르는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나 스스로 주인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류시화 시인은 < 위에서의 생각>이란 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 한다. ..<중략>...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 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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