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게 그리 대단한 일일까.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출근하여 오전 오후 보내다가 저녁이 되면 잠시 쉬다 잠이 든다. 성주풀이라는 민요에는 인생 뭐 별거 없겠냐는 듯 조상들의 삶을 초월한 듯한 통찰이 느껴진다.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 번 가면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이 가사로 보면 인생 참 허무하구나라는 느낌에 곡조가 많이 슬퍼야 할 것 같은데 그리 흥겨울 수가 없다.마치 ‘사람들아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지어다’라는 한 수 가르침을 주는 것도 같다. 조선의 왕릉이나 경주의 고분들은 그 속에 잠든 인물들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서울 현충원에는 나에게 익숙한 대통령 네 분이 묻혀있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대통령들이다. 이들과 내가 동시대를 살았다는게 새삼 낯설게 여겨진다.
그런데 달리 보면 사는게 참 대단하고도 경이로워 보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순서에 맞추어 오가고, 밤 하늘을 보면 대부분 생명체라고는 없는 별들인데 나는 어쩌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나 살고 있는지 기적 같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 몸을 이루는 세포나 주변의 물질들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원자가 나오고 이어 양자와 전자, 쿼크까지 나오지만 대부분은 텅빈 공간들이다. 빈 공간으로 이루어진 나는 어떻게 보고 듣고 맛보고 생각과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이 또한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삶이 대단한 거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럼 사는게 별게 아니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산다는 게 참 허망하면서 대수롭지 않기도 하고, 놀랍고 경탄할 만한 일이 되기도 한다. 이것도 일체유심조라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단 몸뚱이는 물질계이니 먹이고 재우고 적당히 운동도 시켜주어야 한다. 인간의 삶이 다른 동물들 처럼 직접 사냥하거나 열매를 딸 일도 없고 집을 직접 짓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효율적인 삶이다. 다음으로 생각이나 감정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 영역이니 물질계인 몸이 사그라지는 그날까지 나 자신과 주변에 대해 따스하고 감동하는 시간들로 채웠으면 좋겠다. 천지만물은 좋게 봐달라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데 그냥 인간들이 빨간꽃 노란꽃, 좋다 싫다를 논하며 울다 웃다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게 내가 보는 세상이라면 이왕 태어났으니 좀 가볍고 재미나게 살아보면 어떨까한다. 성주풀이의 후렴은 이렇게 끝난다.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