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지난 일이지만 중국의 난징에 갔을 때이다. 저녁이 되어 일행들과 맥주나 한 잔 하러 거리에 나갔는데 어디서 양꼬치 냄새가 나서 둘러 보니 아랍계 사람이 양꼬치를 구워 팔고 있었다. 마침 자리도 마련되어 있어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사장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중국 사람이라고 해서 무척 생경했었다. 알고보니 중국내 소수민족인 위구르 사람이었던 거다.
고등학교 때는 피부색이 까만 흑인 친구와 한 반을 했던 적이 있다. 그는 성격이 밝아서 아이들과 잘 어울렸는데 가까이 가면 특유의 암내 같은 것이 났었다. 외양으로 봐서는 영어를 잘 해야 할 것 같은데 영어 성적은 별로였다. 졸업 후 친구의 행방은 모르겠지만 이름을 미국식으로 고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혼혈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적응이 쉽지 않았을 거다.
국민 영토 주권은 국가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이다. 이 중 국민이라는 요소는 다른 것들에 비해 논란이 많은 편이다. 어느 나라든 한 국가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 비해 생김새나 풍습, 종교가 다른 소수자들은 주류 사회에 들어가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활 터전을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러니 그들은 양쪽에서 이방인 소리를 듣게 된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지만 주류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크리스찬인 백인 계열의 앵글로 색슨족일 것이다. 아니 그냥 백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유색인종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가끔 일어나는 인종차별로 인한 흑인폭동을 보면 저 나라의 국민 갈등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이 그런 사회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주변에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어머니가 외국계인 아이들이 한 반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생김새는 외국인인데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툭 건드리면 영어나 동남아어가 나올 것 같은 이들에게 한국말 잘 하시네요라고 하면 자기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대체 한국인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얼마 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방송인 타일러가 고향인 미국에 가서 누나 가족을 만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의 매형을 소개하는데 흑인이었다. 당연히 그의 누나는 백인이었고.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백인의 매형일거라 여겼던 나의 고정관념을 흔들었기 때문일 거다. 알게 모르게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나는 부지불식간에 백인들에 비해 다른 인종들을 주변인으로 인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이나 유럽의 백인들이 하는 것이 표준이라는 생각은 새로운 사대주의의 면모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해 보인다.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정신적 사대주의도 극복해야 하지만 아프리카나 동남아에 대한 우월감도 벗어나야 할 과제이다. 그래야 진정한 유나이티드 코리아의 모습이 나올 것 같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제이다. 우리는 지금껏 누군가를 섬기며 살아왔던 사대주의의 역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가 어떤 아젠다로 그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면 자기 주체성과 함께 타자에 대한 넓은 포용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당장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북한에 대해서도 수용하기 어려워 한다. 어쩌면 경제성장보다 이게 더 힘든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