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이었을 거다. 나는 모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는 저자의 연락처를 문의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어떤 연결선상의 운명 같기도 하다. 2017년 어느 날 KTX를 타고 출장 가는 길에 눈앞의 잡지를 꺼내 들었고 그 속에 소개된 ‘2시간이면 가는 유럽, 블라디보스톡’ 이라는 여행지 소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사진에 나온 유럽의 거리 풍경에 이끌려 언제 한 번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었다. 그게 봄이었나 보다. 그 해 가을, 나는 블라디보스톡행 러시아 비행기에 올라탔다. 내심 불안한 마음은 있었는데 당시에는 블라디보스톡 관련 여행책자가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숙소를 찾아가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지평선상에서 해가 뉘엿뉘엿 지던 풍경이 마음에 남아있다. 오래된 블라디보스톡 대합실에서는 30대의 안중근이 몸에 권총 한 자루를 품고 기차를 타기 위해 내 앞을 지나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고, 독수리 전망대에서는 눈 앞에 펼쳐진 동해 바다와 금각교를 보기도 했지만 뒤의 구릉지를 보면서 저 너머 유럽까지 이어질 대륙을 그려보니 벅찬 감동도 밀려왔었다. 짧았지만 강렬한 여행 기억 때문일까 국내에 들어왔지만 뭔지 모를 여운이 남아 러시아어 학원에 등록을 했고 키릴 문자의 러시아어와 함께 1년 정도를 보내었다.
그즈음 교보문고에서 만난 책이 이병한 교수의 ‘유라시아 견문록 3’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유럽부터 ‘~스탄’이라는 이름이 붙는 대륙의 여러 나라들과 러시아를 역사적 관점에서 짚어가며 여행한 기록이었는데 책에 대한 감동이 저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져 출판사에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저자를 직접 만나고 싶을 때 가끔씩 이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게 저자와 연락이 닿아 강의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줄 거라며 ‘대륙 학교’를 소개해 주었다. 그것이 내가 유라시아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구체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대륙 학교를 마치고 그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니 이제는 관심에서 좀 더 나아가 참여와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으로 다양한 논의가 오간다. 사할린 동포들에게 달력 보내기, 우수리스크의 한인학교 후원, 남북 철도 연결 사업, 북경 동계 올림픽에 남북 응원단을 열차로 보내기, 블라디보스톡에 열리는 남북러 청소년 음악회를 기획도 하는 등 얼핏 들으면 생뚱맞은 이야기에 열정을 보이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래도 재미가 있다.
어제는 ‘코리아 이니셔티브’라는 주제의 줌 촬영에 패널로 참석하였다. 비록 오프라인 공간에는 10여 명 정도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1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고 한다. 행사를 마친 뒤 이병한 교수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시작은 그분의 책 한 권이었지만 나에게는 은퇴 이후 큰 방향성을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유라시아 대륙은 50대 중반에 찾은 나의 큰 즐거움이자 보람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