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증권사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그는 회사의 교육과정에서 만난 인연이었는데 증권사 직원 같지 않게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직장의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걸로 보면 그의 내공이 상당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이가 동갑이라 친근감이 더 했는지도 모른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다소 다급해 보였다. 조금 있다 자신이 전화를 주겠다고 하기에 얼핏 드는 생각은 어떤 큰 주식거래가 진행 중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전화를 받았는데 잘 지내시냐는 나의 물음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니던 회사를 두 달 전 그만두고 지난 3월에 지방의 농업계열 전문대학에 입학했고 지금은 실습 중이라고 했다. 그 긴장감 도는 증권회사에서 30년을 채우고 이제는 어린 동기생들과 농사일을 배우는 그가 참 대단해 보였다. 증권 전문가 출신의 농업인은 좀 생소하긴 하다. 그런데 그것이 늘 품어오던 자신의 오랜 꿈이었다고 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우리의 모든 제도나 시스템은 평균수명 50세 시대에 맞춰진 것이라 지금과는 맞지 않는 게 많다며 직장생활을 30년 정도 하고 은퇴하면 그 기간과 비슷한 기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대체 어떤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묻는다. 게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인생 2막에 다 쏟아내고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며 명함에 의존하는 삶은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초라해지니 조심들 하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식민지 국가에서 벗어나 한 세대만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한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되었다. 김정운 교수의 말을 빌면 그것들은 수단적 가치들인데 우리가 왜 그렇게 잘 살고자 했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피를 흘렸던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으로서 삶의 재미와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였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그런데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이 길은 우리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던 길이기에 재미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행복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였다.
증권회사에 30년 근무하고 농업계열 전문대학에 입학한 나의 지인이나, 교수직을 그만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배우러 일본의 전문대학에 입학했던 김정운 교수나 다 먹고살만하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니 이것이 답이라는 말은 못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 50여 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건 앞으로 꽤나 오랜 기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말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다. 그러면 냉소적으로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그 물질적인 것조차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어떡하냐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지난 50년간 물질적인 것을 채우려 해도 잘 안 되었는데 인생의 남은 30년 동안에 그게 잘 될까? 젊고 패기 넘치던 그 시절에도 안 되던 것이 점점 기력 떨어지는 시기로 넘어가면 잘 된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여기서 인문적 성찰이 필요하다.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나이 70,80세가 되어서도 돈, 돈 하며 쫓아다니는 인생은 좀 고달파 보여서다. 인생 2막까지 돈을 좇았는데 마지막 3막까지 돈만 추구하다 관속에 들어간다면 삶이 너무 덧없어 보일 것 같다. 비록 많이 지니지는 못했어도 현재 내가 가진 수준에서 재미를 느끼고 행복할 방법을 찾는 게 은퇴하는 사람들의 큰 과제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