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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Apr 03. 2021

141. 공부하는 어머니

무언가를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기보다는 여러 개 펼쳐 놓고 다이내믹하게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이것저것 하는 게 꽤 많다. 하지만 두 개의 큰 줄기만은 잡고 있는데 ‘글쓰기’와 ‘유라시아 대륙’이다. 내가 펼쳐 둔 것들은 모두 이 두 줄기의 곁가지들인 셈이다. 주중에는 주로 새벽이나 저녁시간을 활용해야 하고 주말에는 거의 도서관에서 자료 찾으며 대학원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어제는 친한 후배와 차를 마시면서 나의 일상을 들려주었더니 좀 쉬어도 될 시기인데 왜 그리 열심히 사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고 여겨지나 보다. 그런데 이건 열심히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난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일 거다.


공부는 굉장히 고급진 취미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자칫 인생 후반에 무료해질 수 있는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난주 부모님 댁에 갔더니 올해 82세인 어머니가 요즘 들어 좀 바쁘다고 하셨다. 뭐 하시냐고 여쭈니 구청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신다는데 그게 정말 영어, 수학 같은 교과목이 편성된 학교였다. 하루 세 시간씩 격일로 가시는데 새로운 활력이 생긴다는 말씀도 하셨다. 제일 나이 많으시겠다고 했더니 더 많은 사람도 있다기에 다소 의외였다. 내 어머님이나 그 노인분들은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구겨 넣는 게 아니라 정말 공부하고 싶어 그 과정을 가고 계신 분들이었다.  


80대에 배우는 영어와 수학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공부가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부 자체의 즐거움을 누린다면 또 다른 이야기이다. 인간사를 돌아보면 공부는 주로 그 사회의 엘리트 계급들이 했었고 노동은 노예나 평민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시절이 좋아져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지만 문제는 공부의 본질이 흐려진 것이다. 공부 자체가 목적이라면 한껏 누릴 즐거움들은 사라지고 억지 공부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이제 공부를 강요받는 나이는 아니다. 이 말은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는 좋은 나이라는 뜻도 된다. 80대의 연세에도 공부를 놓지 않으시는 어머님을 뵈며 논어의 학이편이 떠 올랐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 아라.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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