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하나, 가죽 속에 털이 난 것은?
답, 옥수수
문제 둘, 깎을수록 길어지는 것은?
답, 연필심
알다시피 수수께끼이다. 어릴 적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책자가 있었는데 수수께끼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을 너무 자주 보게 되니 반사적으로 답이 툭 튀어나올 만큼 암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수수께끼는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닌 게 되었다. 익숙해진 것이다. 질문을 받으면 답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어떤 상태일까? 몰라서 하는 질문도 있지만 알면서 하는 질문도 있다. 답을 구하는 질문도 있지만 답을 정해 두고 하는 질문도 있다.
그런데 질문도 종류에 따라 그 전제가 달라지는 것 같다. 몰라서 하는 질문은 상대가 답을 알 것 같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고등학생이 미적분을 공부하다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에게 묻지는 않는다. 반면 답을 알면서 하는 질문은 상대를 평가하기 위한 질문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구술시험이다. 묻고 답하는 상황이지만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이다. 그리고 입사 면접과 같은 좀 특이한 질문도 있다. 답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지원자가 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는 방식이다.
30년 전의 이야기지만 회사의 대리 승진시험은 악명이 꽤나 높았다. 주관식과 객관식 혼합형이었는데 특이했던 것은 객관식 문제임에도 감점 방식이 적용되었다. 사지선다형 문제인데 맞히면 점수를 받지만 엉뚱한 답을 찍으면 감점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 없으면 차라리 공란으로 두는 게 적어도 마이너스 점수는 받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객관식이 더 어렵다는 말을 했을까. 지금은 승진시험도 폐지되고 다양한 평가 방식으로 승진자를 결정하지만 그때 사지선다지만 둘 가운데 답이 헷갈릴 때 이걸 답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출제자의 의도를 찾으라고 한다. 이 말은 출제자에게는 이미 정해진 답이 있다는 것이고 그 답을 비껴가면 틀리는 것이다. 이렇게 답하는 방식은 질문을 한 상대에게 맞춰가는 것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익숙한 방식이다. 그것은 수수께끼 책을 외우다시피 하여 질문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답이 튀어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에는 크게 생각할 것도 없다. 오직 정답 여부와 속도만이 평가의 잣대가 된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질문자 스스로도 답을 모르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제는 당신 스스로 질문을 만들라고까지 한다. 지금까지는 답을 하는 게 내 역할이었는데 갑자기 질문을 만들고 질문을 하는 역할로 바뀌었다. 열심히 수수께끼 책을 다 외웠더니 이제부터 책에 있는 내용 말고 너 스스로 수수께끼 문제를 만들어 질문해 보라는 것과 같다.
답을 알고 질문하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위치가 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치열하게 답을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남에게 답을 아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질문을 만들고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 그가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인 사회도 질문하는 것이 익숙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거다. 하지만 군대에선 웬만하면 질문이 없을수록 좋을 것 같긴 하다. ^^;
소대장 : 돌격 앞으로!
병사 : 제가 왜 그래야 되죠?
소대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