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학로 소극장에 갈 경우가 있다. 평일 저녁의 무대는 정말 몇 안 되는 관객들만이 배우들의 연극을 보게 되는데 어떤 때는 썰렁한 객석에 앉은 내가 배우들 보기에 미안할 정도이다. 무대 위의 배우는 관객이 많을수록 힘이 나는 법이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그 연극의 관객들은 누구인가. 각자의 삶에서 만나는 여러 타인 들일 것이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문턱을 넘어서면 관객 역할을 했던 타인들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특히 직장인들은 은퇴를 계기로 그 많았던 관객들은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남은 관객들은 가족들이나 몇몇 지인들 정도이다. 이제 그런 무대에 서야 한다. 몇 안 되는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의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BTS의 한 멤버는 자신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상황이 두렵다는 말을 했다. 언젠가는 저 많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인데 그전에 은퇴한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인기 연예인들이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를 보면 그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그런데 BTS의 대단함은 이것이었다. 언젠가는 찾아올 그 시기를 추락이 아닌 착륙으로 보고 객석에 아무리 적은 수의 팬들이 있더라도 자신들은 노래하겠다고 했다. 추락이 아닌 착륙이다.
비행기는 이륙을 하며 하늘 높이 올라간다. 하지만 비행의 끝은 착륙이어야 한다. 착륙하지 못한 비행기는 추락하는 길 밖에는 없다. 우리의 삶도 이륙해야 할 때가 있고 착륙해야 할 때가 있다. 중년의 시기는 비행의 정점을 찍고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는 시기이다. 비행사들이 가장 긴장할 때가 이륙과 착륙의 시기라고 하듯 중년의 시기는 추락이냐 착륙이냐를 결정하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이다.
이제부터는 나는 관객이 줄어든 무대에서 연극을 해야 한다. 과거의 화려했던 무대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이 무대에서 어떤 연기를 펼칠 것인가. 소극장의 관객이 아무리 적어도 배우는 자신의 연기에 몰입하는 법이다. 연극의 3요소는 무대, 배우, 관객이다. 여기서 하나를 빼야 할 상황이면 무대를 뺄 것이다. 배우와 관객만 있어도 연극은 된다. 만일 또 하나를 빼야 한다면 관객일 것이다. 배우 없이 무대와 관객만 있는 연극을 상상해 보라.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배우이다. 관객이 없을지라도 배우는 연기를 할 수 있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한다. 그 연극은 관객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