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기간 조직을 이끌었지만 나의 경우엔 구성원끼리 갈등을 보일 때가 제일 난감한 순간이다. 자기들끼리 갈등하는 건 모른 척 넘어가겠는데 기어이 나에게까지 들고 와서는 상대를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들어보면 그 비난이라는 게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판단이고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경험이 적었을 때는 시시비비를 가리려고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갈등만 더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기에 요즘은 들어는 주되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걸로 하고 있다. 나도 어느 직원이 좋아 보일 때가 있다.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내고 직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직원은 그냥 뭔가를 하나 더 해주고 싶은 직원이다. 내가 볼 때는 나무랄 데 없는 직원인데 그런 직원조차 누군가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걸 보면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의 갈등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회사라는 곳은 여러 사람들로 구성된 곳이고 직원들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의 장이기도 하다. 상대보다 경쟁의 우위에 서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내가 성과를 더 내거나 상대가 흠집이 나서 처지는 경우이다. 이것도 조직의 성격에 따라 약간 다른 면이 있는데 일반기업들은 성과를 더 내는 것이 경쟁에 앞서는 방법이지만 공공기관 같은 곳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위치로 가는 방법인 것 같다. 특이하게도 내가 몸담은 회사는 이 둘이 복합적인 회사이다. 오랜 기간 정부와 일을 한 업력 탓인지 업종은 성과를 지향해야 하는데도 조직문화는 위험을 극도로 회피하는 성향이다. 그러니 직원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성과의 지향보다는 실수하지 않는 것을 더 중요시하게 되고 업무도 영업보다는 관리 부문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성과를 내어야 할 조직이 내부 갈등에 휩싸이게 되면 여러 면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요즘은 구성원 중 누군가를 비난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나름의 원칙을 이리 정해 두었다.
첫째, 끄덕끄덕 공감은 하되 동감은 하지 않는다.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누군가를 비난하는 사람의 말에 맞장구치다 보면 그와 내가 한 편이 되어 비난의 상대를 함께 까는 경우가 있다. 리더가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비난하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니 그의 감정에 공감은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 같은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일리가 있다’ 정도로 받아주는 편이다.
둘째, 판단은 내가 하지만 섣불리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들었다고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은 언제나 희생양이다. 그렇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입을 내가 다 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그의 행동을 보고 내 스스로 판단한다.
셋째, 좋고 싫음이 없을 나이가 되었다.
이제 누군가를 좋고 싫어하는 것을 넘어설 나이도 되었다. 사람마다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고 그의 장점을 보느냐 단점을 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라 여긴다. 다만 갈등은 그들의 문제이고 내가 그들로 인해 괴로울 이유는 없다. 삼각형의 꼭짓점 A, B, C로 치면 B와 C는 서로 비난하고 갈등관계일 수도 있지만 꼭짓점 A는 B, C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굳이 누군가를 미워해서 스스로를 괴롭힐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