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올해 나이가 74세라고 하는데 수상소감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그녀의 수상소감을 들어보면 긴 인생의 풍상을 겪어 오며 단단해진 한 인간의 깊은 통찰을 보게 된다. 특히 발음은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적절한 유머와 감동을 담은 탄탄한 영어실력이 돋보인다. 그녀가 출연한 ‘미나리’라는 작품은 미국의 독립영화 수준이라고 한다. 22억이라는 예산이면 무척 큰 금액 같은데 저 예산의 독립영화라고 하는 걸 보면 영화 한 편 찍는데 들어가는 돈이 정말 엄청나긴 한가 보다.
생활형 배우였던 그녀는 나이가 60세가 되던 해부터 사치를 좀 부리기로 했다는데 그녀의 사치란 돈과는 상관없이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일을 하고 싫어하는 사람과는 안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주목받는 그녀의 어록이 탄생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녀의 사치라는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한 번뿐인 인생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고 싶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어쩌면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설령 처음에는 좋아했던 것도 그 감정이 끝까지 간다는 보장도 없다. 들꽃의 시인 나태주는 어릴 적 품은 꿈을 모두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과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의 꿈에 만족할 리가 없기에 늘 결핍을 느끼고 껄떡거리며 사는 인생이 되는가 보다.
어쩌면 오늘날 그녀의 오스카상의 영예는 60세부터 부리기로 한 사치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생활형 배우를 벗어난 그녀가 ‘미나리’라는 독립영화에 출현한 동기가 인상적이다. 너무도 디테일하게 상황과 감정을 묘사한 대본을 읽고 감독 본인의 일이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녀가 사치를 부린 것이다. 그녀의 60세 넘어하는 사치라는 말이 내 귀에 착 감겼던 이유는 나 또한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이 나이 들어서까지 남에게 맞추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나’, ‘좀 덜 먹고 덜 쓰면 되는 거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같은 다소 시니컬한 면도 없지 않다. 이것은 ‘난 너에게 원하는 바가 없다. 그러니 너는 나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마음이 이러하면 상대가 누군들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 어려웠던 이유가 돈 때문에, 승진 때문에, 처자식 때문이었다면 퇴직 1년여 남겨둔 50대의 현시점에서는 하고 싶은 것은 하는 사치를 좀 부려도 될 것 같다. 나날이 쇠약해지시는 내 부모님을 뵐 때마다 인생의 활동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