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중간 과제를 마무리 짓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바람이나 쐴 겸 과제하느라 빌린 책들을 반납하러 남산도서관에 갔다. 책을 반납하고 서가를 둘러보는데 눈에 확 끌리는 책이 한 권 있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제목으로 정한 그 책은 ‘강릉 한 달 살기’였다. 이런 생각을 나 말고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그 저자인 ‘아뉴’라는 사람의 자기소개가 또 마음에 든다.
‘책 만드는 일을 합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 대학원에서는 국제통상금융을 공부했습니다. 기업의 재무팀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재무제표보다는 텍스트에 더 끌려 출판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며 해외 도서를 번역합니다. 자유로우면서도 안정된 삶, 남들과는 다르게 살지만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모순적인 인생 목표를 성취하려 노력합니다.’
어쩜 이리도 내 마음과 같을까. 여건이 되면 만나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싶다. 특히 ‘자유로우면서도 안정된 삶, 남들과 다르게 살지만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모순적인 인생 목표’를 추구하는 그가 그리 낯설지 않다. 어느 선배님은 내가 추구하는 ‘안정된 자유’에 대해 그런 것은 없다며 모순을 지적했는데 나처럼 모순된 목표를 추구하는 텍스트 중독자가 또 있다는 사실로도 저으기 위안이 된다.
대강 철저히, 따로 똑같이, 따뜻한 카리스마 등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둘 다를 가지고 싶은 욕심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미 그 단계를 거친 싯다르타 같은 인물들도 있었다. 핵심은 그게 무엇이든 취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더 큰 욕심일 수도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궁극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니 말이다.
A. 인간은 괴롭다.
B. 왜 그런데?
A. 이것저것 집착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B. 그래서 어쩌라고?
A. 집착을 버려라.
B.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A.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B. 에라이, 그게 사는 거냐? 나무토막이지.
나는 나무토막 같은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오르지 못하는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보면서 ‘저 포도는 시다’고 말하는 여우는 어쩐지 매력 없어 보인다. 삶은 생기가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삶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도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좋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오늘 출근길 화단에서 튤립 꽃이 지는 모습을 보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탐스런 봉우리가 예뻤던 꽃이었다. 모든 꽃이 그렇지만 특히 튤립은 봉오리때가 너무 예뻐 꽃잎이 벌어져 지는 모습이 아쉬운 꽃이다. 튤립은 꽃피는 과정이 아름다운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