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69.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다

by 장용범

불교에서는 ‘집착’이라고 하지만 다른 말로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할 것이다. 욕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결핍이라는 전제가 있고 채우려는 소유욕이 발동하는 것이 집착의 형태로 나타난다.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동물들에게도 소유욕은 있는 것 같으니 살아있는 생명체의 소유욕은 본능의 하나일 것 같다.


요즘 스스로를 돌아보면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현재 나를 둘러싼 여러 여건들과 그것을 수용하는 나의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가지는 승진이라는 집착의 대상은 회사 정책상 은퇴를 1년 앞둔 이에게는 해당이 없기에 더 이상 추구할 대상이 아니다. 그럼 돈이라는 것이 집착의 대상이 될 만한데 이는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 들어가는 것 아니면 투자를 통해 얻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50대 중반에 새로 시작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른다. 엊그제 한 직원이 대출도 능력이라는 말은 했지만 그것도 이자 낼 수 있는 안정된 소득이 확보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돈에 대한 욕심도 좀 내려두어야 할 때이다. 아이들의 학업, 취업 같은 문제가 있는데 이 부분도 대학은 졸업시킬 수 있겠지만 내가 취업까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나의 평온함은 현재 내가 당면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집착을 다소 내려놓았기 때문인가 보다.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해진다.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과 포기한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나름대로 정리해 보기를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마음까지 내려놓아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것이고 포기한다는 것은 아직도 그 대상에 대한 미련은 남았으나 가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물러선다는 의미일 것이다. 두 유형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를테면 그 대상을 돈이라고 치자. 포기를 한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없는 사람 앞에서는 교만해진다. 하지만 집착을 내려놓은 사람은 돈 많은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고 없는 사람에게도 교만하지 않을 것이다.


한 대학생이 명문대생을 보면 위축이 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우월의식이 생긴다며 이를 고치고 싶다고 법륜 스님에게 상담을 했다. 스님은 원인을 집착의 문제라고 하셨다.


돈에 집착하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에게 비굴해지고, 돈이 적은 사람에게 교만해지는 거예요. 권력에 집착하기 때문에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비굴해지고,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교만해지는 겁니다. 인기에 연연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사람을 보면 비굴해지고, 인기가 없는 사람을 보면 교만해지는 거예요. 얼굴 생김새에 집착하기 때문에 잘생긴 사람을 보면 기가 죽고, 못생긴 사람을 보면 잘난 체하게 되는 겁니다.


존재는 열등한 것도 없고, 우월한 것도 없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다’ 이런 관점을 갖고 살아 보세요. 알아도 잘 안 될 수가 있기 때문에 딱 깨우쳐야 해요.


‘나는 아무런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