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점토판에 새겨진 대화글을 해독하니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어디 갔다 왔느냐?’
“아무 데도 안 갔다 왔습니다.”
“도대체 왜 학교를 안 가고 빈둥거리고 있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이하 생략)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내용을 점토판에 새긴 글이었나 보다.
이번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그것도 남성들의 투표성향이 바뀌었다고 술렁이고 있다. 항간에는 20대가 보수화 되었다고도 하고 현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갈 곳이 없어 야당으로 간 것이라고도 한다. 그중에는 암울한 군사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철없는 세대라서 그렇다는 50대들의 해석도 있나 보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내용이다. 80년대 한창 학생시위가 이어질 때 ‘젊은 놈들이 배를 곯아 보지 않아 철없는 행동을 한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세대라는 것은 약 30년을 분리기준으로 삼는다 하니 지금의 20대는 50대와 한 세대가 떨어져 있는 셈이다.
30년을 분리기준으로 한다지만 인간의 수명이 시대마다 달랐으니 부모와 자식 간의 연령 차이를 세대차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세대 차이가 나면 세대 간 갈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문제는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한 시대에 여러 세대가 뒤섞이다 보니 세대 갈등이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환갑잔치는 60세를 기준으로 한다. 그 시기에 잔치를 연다는 것은 60세를 장수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얘기인데 달리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기를 못 넘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시절엔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차 정도만 있었지 지금처럼 조부모와 부모,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차가 공존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인구 피라미드 구조로 보면 베이비 붐 세대라 하여 50-60대 부모 세대가 많은 상부가 넓은 단지형 구조인데 최근의 비혼, 저출산으로 인해 역삼각형 구조로 변해 가는 것 같다. 이는 잔소리하는 세대는 늘어나는데 그 소리를 들을 세대는 줄어든다는 것이고, 정치적으로 보면 젊은 세대를 위한 정책보다는 꼰대 세대를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 인기를 얻을 전망이다. 대한민국이 늙어간다는 것이다.
지금의 20대 모습을 대략 그려 보았다.
일단 어릴 적 유치원은 나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한글은 물론이고 영어도 공부했다. 피아노도 배웠고 집에 자동차는 당연히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따로 사는 경우가 많았고 친가 외가 모두 조부모 세대가 있어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형제는 없거나 하나 정도 있었고 부모님이 대부분 맞벌이를 하셔서 방과 후에도 학원을 다녀야 했다. 피자와 치킨, 햄버거 등이 익숙하고 어릴 적부터 성차별 없이 성장했다. 오히려 경쟁에서 여자들이 유리한 경우가 많음에도 남자들은 양보를 강요받아 불만이 큰 편이다. 외국여행도 익숙하고 어학연수도 다녀와 외국어 소통에 큰 무리가 없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 온라인 게임에 익숙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이 자유롭다. 20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성장했지만 성인이 되어 독립을 앞둔 시점에 혼란에 빠졌다. 독립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캥거루 족이라 해도 좋으니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그렇다고 조선족들처럼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다. 좀 깨끗하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싶어 늘 준비하는 미생의 위치에 머무는 편이다. 주택을 구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굳이 집을 사야 하나 싶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능력은 많은데 딱히 내세울 것은 없다. 그냥 남들 하는 만큼 배웠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귀한 대우를 받고 자라 누군가 특별대우를 받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즉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이 엄청 심하다. 뭔가 부당하다 여겨지면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인터넷이나 SNS 등에 올려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 가치관이 형성될 때부터 기업의 마케팅에 노출되다 보니 소비에 익숙하다. 버는 것은 못하지만 쓰는 건 정말 잘하는 세대이다.
나도 꼰대가 되었는지 생각보다 많은 서술이 되고 말았다. 어느 세대보다도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지만 공동체보다는 개인 위주의 이기적인 모습에 거부감도 느낀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30년 차이나는 세대와 갈등 없이 지낼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본다. 뮤지컬 시카고의 유명한 노랫말처럼. Understandable, Comprehensible , 이해할만해~ 그럴 만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