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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철학자 되기에 좋은 나이

by 장용범

50대가 되면서 종교에 관심이 생겼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호기심이 일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신이나 종교인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져 온 종교적 가르침과 교리에 대한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지금도 무언가를 믿는다는 행위에는 여전히 거부감이 있다 보니 믿을 신(信), 사람 자(者)로 조어된 신자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종교에 관심을 두기에 적당한 나이는 역시 중년 이후라는 생각이 든다. 중년은 지금껏 상승 지향적인 삶을 살아오다 부모님이나 주변 지인들의 죽음을 자주 느끼는 시기이다. 이제는 부고를 듣더라도 그저 담담할 뿐이다. 어느덧 여러 일상들의 하나가 되었고 조의금을 낼지 직접 조문을 할지 정도만 잠시 고민될 수준이다. 그만큼 이런저런 죽음들을 많이 보아 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에 익숙하다는 것이지 나의 죽음이 해결된 것이 아니기에 이 시기에 종교를 떠올리는 것 같다.


또한 50대는 결과와 상관없이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 회사 근처에 경찰청이 있다 보니 가끔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중에는 정말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런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은데 고집스레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은 자신의 저런 행동으로 어떤 변화가 오리라 믿는 것일까 만일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저 행동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나름 결론을 낸 것이 하나 있다. 저 사람은 결과와 상관없이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하는 사람 같다는 것이었다. 누가 뭐라든 결과야 어떻든 적어도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보면 50대는 그래도 될 나이 같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결과와 상관없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기 같아서다. 50대는 세상일이란 원래 그런 거야라며 물러설 수도 있지만 생각하는 바를 실천할 수도 있는 나이기도 하다. 인생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무슨무슨 날이 많은 5월이다. 여전히 하루하루 생활에 급급해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지금이 50대라면 철학자가 되기에 좋은 나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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