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하여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 직장 내에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의 직급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직급이 낮다고 해서 그의 삶도 그러하리라 여기는 것은 크나 큰 착각이다. 작년에 만들었던 부서 내 민원 대응 조직에는 퇴직하신 선배들이 계약직으로 입사하여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그 조직에는 퇴직 전 직급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인데 어떤 분은 준임원급으로 퇴직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은 만년 과장의 직급으로 퇴직하신 분들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이 된 배경에는 과거의 직급과 상관없이 그 일을 가장 잘할 것 같은 분들로 구성했던 이유가 크다.
어제는 한 선배님을 모시고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퇴직 몇 년을 남겨 두고 겨우 과장으로 승진하여 오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신 분이었다. 평소 알고는 지냈지만 깊은 이야기까지 나눌 사이는 아닌 분이었다. 현직에 계실 때에도 일은 잘하시는데 승진시험 응시를 안 하니 궁금증을 자아낸 분이었다. 한 번은 답답한 마음에 승진시험에 응시하시라고 연락까지 드렸던 분이었다. 이제는 은퇴도 하셨고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상황에서 비로소 당신의 이야기를 하신다. 그 당시 자신은 승진시험을 준비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분의 이야기다. 형제 많은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오랜 기간 병석에 계신 어머님을 돌보러 매주 시골로 내려가야 했고, 이런저런 사유로 조카 다섯을 거두어 키웠어야 했다. 한 달에 쌀 80Kg를 먹어 치울 만큼 많은 식구들로 집안은 늘 북적였는데 당시 그런 속사정을 알리 없는 내가 승진시험을 응시해 달라며 전화를 주었을 때 참 고마웠다고 한다. 내가 그분을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더라며 그렇게 북적이던 집도 조카들과 아이들이 하나 둘 독립해 나가니 이제는 검찰직 공무원인 딸과 아내만 남았다고 한다. 새삼 그 선배님이 대단해 보였다.
고향집에 동생네 가족들까지 모이면 60여 명이 되더라는 말에는 입이 벌어진다. 그분인들 왜 승진에 대한 생각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병으로 쓰러진 홀어머니를 십 수년간 돌봐야 했고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막내 동생의 아이까지 거두어 키워야 했던 장남의 무게가 남달랐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울화가 터져 마음을 다잡기 위해 집중할 대상을 찾았는데 그게 공부였다고 한다. 승진시험처럼 스트레스받는 공부가 아닌 그냥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덧 대학원까지 마쳤다는 말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정말 대단하시다는 나의 말에 이제 다 지난 일이라며 반백의 선배님은 허허로운 웃음으로 화답하신다.
남의 인생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정말이지 ‘니가 나에 대해 뭘 알아’라는 말이 실감 나는 시간이었다. 직장 내 직급은 사람에 대한 착각을 일으킨다. 당연한 말이지만 직급은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통하지 벗어나면 별 다를 바 없는 한 개인에 불과하다. 어제 선배님을 모신 시간은 드러난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가를 깨닫게 한 좋은 시간이었다. ‘니가 나에 대해 뭘 알아’라는 말처럼 ‘나는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과 사람에 대해 좀 더 겸손할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