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지각할 것 같다는 딸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 출근길에 종로를 지났다. 별생각 없이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이가 ‘아빠, 대로변 상점들이 죄다 비어있어’라며 말을 건넨다. 코로나 1년이 지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타격이 상상 이상이다. 종로, 명동, 을지로 등 핵심 상권의 상가들이 점점 비어 가고 있다. 아무리 코로나 방역 우수국가라고 해도 국민들의 직접적인 타격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산 하이야트 호텔은 미국 대통령이 방한 시 머무는 최고급 호텔이다. 그 앞에도 요즘 어수선한 편이다. 해고당한 직원들이 부당함을 호소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하거나 플래카드를 설치하여 깔끔해야 할 호텔 앞 전경들이 마치 무당집을 연상시킨다. 다 이럴까? 그건 아니다. 금융권과 온라인 마켓 등은 수익이 넘쳐나고 IT업종의 개발인력들은 몸값이 상승하고 있다. 그럼 자영업자들은 다 문을 닫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매출이 상승하는 집들이 꽤 있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은 코로나로 인해 배달 주문이 늘어나면서 장사가 더 잘되고 있는 반면 특별한 경쟁력이 없었던 곳은 하나 둘 폐업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골목상권도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백신 접종이 확대되고 있고 이에 따른 경기회복 조짐도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지만 한 번 쓰러진 자영업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역사적으로 코로나 같은 팬데믹은 두 번 있었다. 중세의 흑사병과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다. 이런 팬데믹이 한 번 지나가면 사회는 큰 변혁이 일어났었다. 중세 흑사병이 닥치자 교회의 권위가 무너져 내려 유럽은 신에게서 인간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스페인 독감은 당시 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고 이후 유럽의 국가들은 왕의 국가에서 국민의 국가로 힘이 이동했다. 항간에는 우리나라 3.1 운동도 스페인 독감의 영향이 있었다는데 전국적인 감염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민심이 흉흉해지는 가운데 3.1 운동이 전국적인 시위의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의 사회도 큰 변혁이 따를 것이라 여겨진다. 내년 정도면 코로나도 어느 정도 잡힐 것이라 희망하지만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온라인 활동에도 익숙해지다 보니 코로나 이후에는 대면활동과 함께 비대면 비중도 크게 늘어날 것 같다. 그게 회의나 교육, 쇼핑이든 상관없이 전 영역에서 비대면은 익숙한 활동영역이 될 것이다. 비대면이라는 화두로 변해갈 일과 직장의 모습을 그려본다. 일종의 상상의 시나리오이다.
회사는 한 곳에 모이는 출퇴근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일의 성과를 납품하는 개념으로 변모한다. 중간 관리자들이 급격히 힘을 잃어가면서 조직 내 탈권력화가 가속화될 텐데 어쩌면 일을 코디네이터 하는 사람과 일을 하는 사람만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권력자는 소통과 조율을 통해 레고 블럭처럼 각자의 일을 조립하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한 프로젝트를 마치면 그 조직은 해체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면 또 모이는 방식이다. 회사에 대한 애사심은 급격히 옅어지고 개인주의가 두드러진다. 이제 회사 내 권력이라 할 ‘직’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퇴색할 전망인데 회사는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나의 ‘업’은 계속 유지된다는 스스로 경력을 관리해야 할 시대가 될 것이다.
온라인 시장이 점점 커짐에 따라 이 분야의 마케팅이나 활동이 늘어날 것이다. 공간은 소유하는 개념에서 공유하는 개념으로 변모하면서 기업의 사옥은 점점 축소되거나 지정석이 없는 공유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리고 회사가 굳이 사원을 보유하고 있을 필요도 없어지는데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시장에서 시간 단위로 단기 고용하는 긱스 노동자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 것이다. 이제 개인은 회사에 근무하더라도 하나의 사업자라는 마인드로 회사 밖에서도 자신의 커뮤니티 영역을 넓혀 자신의 성과를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냐는 물음에 ‘OO회사 부장입니다’가 아니라 ‘저는 이러저러한 일을 해서 이런 성과를 낸 사람’이라는 것이 더 먹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팀 단위의 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건설현장이나 보험사 영업조직처럼 팀으로 일자리에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닐 가능성이 커 보인다. One Team이라는 구성원들의 끈끈함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늘 것 같다. 이 시기는 열린 사고만 가졌다면 연령이 많은 경험자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일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영역은 은퇴자들의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다. 단,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 안 그러면 꼰대 소리 들어가며 뒷 방에 앉아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