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는 나이가 동갑이었다. 자칫 불편할 수도 있는 사이였지만 10년 전 부서장과 직원으로 만난 이래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돈독한 사이였다. 그의 인생 내공은 한 직장에서만 내리 근무한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웠는데 대기업 기획실의 촉망받는 직원으로 모든 게 완벽해 보였지만 97년 IMF라는 직격탄으로 회사가 부도를 내자 과감하게 보험영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겪었으나 그의 성실함과 겸손함은 그 힘든 영업의 세계에서도 빛을 발휘해 고객이 찾는 영업맨이 되었다. 그는 승승장구하며 한창 영업이 잘 될 때 또 한 번의 변신을 꾀했다. 보험대리점을 차려 개인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대리점은 잘 되었다. 외부에서 상당한 금액으로 인수 제안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 일이지만 그는 당시 그 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게 참 아쉽다는 말을 했었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사업은 정말 폭망 해 버렸고 사업실패 후 자살의 유혹을 이겨내고는 늦은 나이에 경력직 사원으로 이 회사에 다시 입사를 했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집은 하나 건졌다며 너털웃음 짓는 그에게서 강한 인생의 내공을 느꼈다. 나는 그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고 다행히 상사들의 동의하에 지점장을 거쳐 지역의 사업단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세 번째 위기를 맞았다. 전임 단장이 타사로 떠난 지역의 무너지는 영업을 살리라는 소방수의 명을 받고 긴급 투입되었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지역 내 기반이 없는 그로서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었으나 이제는 나도 힘을 발휘할 처지도 아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러다 지난 주중에 연락을 취해 주말을 기해 서로 마주했던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그의 마음을 위로하는 간단한 술자리였던 셈이다. 지난해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것 같았다. 벌써 1년이 지나간다. 작년 6월 끝무렵 작은 아버님의 부고를 접하고 내려가던 KTX 안에서 나의 좌천 소식을 들었던 때가.
그에게 이제 좀 내려놓으면 어떻겠냐며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작은 아버님의 관을 쓰다듬으며 들었던 마음은 ‘결국 이리되는데 지금 나에게 닥친 이게 뭐라고’였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새로운 부서에 출근하는 마음이 못내 무거워 시내 카페에 앉아 멍하니 오전 시간을 보내었다. 그때 불현듯 들었던 생각이 지금 생각해도 참 기특하고 특이하다. ‘언젠가는 그만둬야 할 직장이다. 그래 ,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직장을 그만뒀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아직 일을 할 여건이니 새로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2년 보장 알바 자리로 지금 이 직장이 얻어걸린 거다. 조건이 참 좋다. 급여 수준이나 처우가 알바 자리로는 정말이지 최상의 직장이다. 관점을 이렇게 바꾸니 이 직장이 너무도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이 들었다. 조용히 나의 이야기를 듣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피어난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예전에는 일 자체에 몰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씩 이루어 가는 일의 성취에 중독도 되었었다. 하지만 작년 그 일을 겪고 나니 내가 직장을 다니는 진짜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회사의 주인이 아니었다. 주인도 아닌 내가 그동안 주인처럼 일을 한 것이다. 머슴이 주인처럼 일을 할 때 누가 제일 좋아할까? 진짜 주인이 기특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일을 대강대강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 말고 나를 위해서 일하라는 것이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돈을 받기 때문이다. 딱 그 정도만 기대할 때 회사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어진다. 회사는 내가 평생 머무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주인의식보다는 손님 의식이 더 맞는 곳이다. 그래야 몸담은 회사에 대해 좀 더 당당해질 수 있다. 손님은 이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