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비 오는 휴일은 그냥 좋은 날이다. 하루 종일 빗소리만 듣고 뒹굴거리고 싶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휴대폰을 꺼내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노트를 꺼내 끄적이기도 한다. 그냥 쉬어도 괜찮은 비 오는 휴일인데 마음은 강아지 마냥 이리저리 서성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내 마음을 살피다가 드는 생각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때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이 마음은 왜 그럴까? 가장 쉬울 것 같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이러하다면 은퇴 후 그 많은 시간들은 어찌 감당할까도 싶다. 그런 면에서 서울역 앞 노숙자들은 이미 상당한 내공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일일부작 일일 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가르침에서 보듯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한 죄책감이 들게끔 세팅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마음은 또 쉬고 싶다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쉬고 있으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이제는 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마음과 몸이 마치 시소 놀이처럼 따로 놀고 있다.
A: 무언가를 좀 해라.
B: 할 게 없어요.
A: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 봐라.
B: 그런 건 하기 싫어요.
A: 그럼 쉬어라.
B: 뭔가 하긴 해야 할 텐데.
한 마디로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달리 보면 지금 안 해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자꾸 미루고 있는 것이다. 뭐 그리 지내도 된다. 주변에 아무런 피해를 끼치는 행위는 아니니까. 그런데 좀 심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서서히 무언가를 하러 움직여 보기로 하자. 하지만 이렇게 늘어진 상황에서 뭔가를 하기로 했다면 나를 속이는 약간의 트릭이 좀 필요하다. 먼저 종이를 한 장 꺼내어 오늘 할 것 리스트를 쭈욱 적어간다. ‘할 게 없는데’라고 말고 사소한 것이라도 적어 본다. 사실은 할 게 없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거다. 신발장 정리, 거실 정리, 책장 정리 등 아주 작은 사소한 것들을 리스트에 작성하는 작업을 해 본다. 이제 할 일이 생겼다. 그리 과하지 않은 일이라 몸을 움직여 하나씩 지워 나간다. 워밍업이 되다 보면 이번에는 좀 더 난이도 있는 일로 들어간다. 역시 리스트를 작성하고 또 하나씩 지워간다. 정말 너무 늘어져 아무런 의욕이 안 일어날 때 우리는 가장 간단한 작업으로 몸부터 깨우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