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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시험 점수가 만든 계층 사회

by 장용범

시험 점수가 높으면 더 많은 특혜를 누리는 것이 정당한가. 기업의 블라인드 면접을 명문대학 출신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란도 있는 것 같다. 치열한 대한민국 입시제도 하에서 그 어려운 과정을 뚫고 명문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볼멘 주장이다. 일견 이해는 된다. 여기에 철학자 김상동 교수는 이의를 제기한다. 시험점수가 높다고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공정한가이다.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던 사실에 대한 시원한 한 방의 질문이었다. 시험점수가 높아 명문대학에 들어간 것까지는 인정하겠는데 그것으로 왜 더 많은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운전면허 시험을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관련 직종에 취업할 때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운전면허란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지 운전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운전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의 보상은 그 후 자신이 수행한 일의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험성적이 높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는 것까지는 인정하나 그로 인해 더 많은 보상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었다.


LH공사 직원들의 개발정보를 이용한 투기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게시판에 올라온 한 블라인드 댓글이 있었다. ‘부러우면 시험쳐서 들어오시든지’. 그 때문에 조직 전체가 썩었다며 더 큰 논란이 됐었다. 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에서도 기존 정규직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자기들은 어려운 시험을 거쳐 입사했는데 단지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시험이란 관문을 통과했으니 남보다 더 큰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 김상봉 교수는 되묻는다. 과연 그런가? 때로는 질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다. 시험이란 늘 정답이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정답을 찾는 교육을 받아 왔다. 하지만 우리의 당면한 문제는 정해진 답이 있다기보다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만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나이 어릴 때는 정답이 많이 보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정답이 잘 안 보인다. 대한민국에는 정말 많은 시험들이 있고 사람들은 더 큰 보상을 기대하며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수행한 일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시험의 합격여부로 자신의 특권이 당연시되는 세상은 새로운 계급사회를 형성한다. 혹자는 그럴 테지. 일단 들어가야 성과를 낼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합격했다고, 교원임용시험이나 변호사, 의사시험에 합격했다는 그 자체로 자신의 특권이 정당화되는 사회는 불공정 사회이다. 어떤 변호사고 의사인지, 어떤 선생인지가 보상에 대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명학원 강사들의 서울대 등 명문대 졸업 학력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감상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