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여인이 있다.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서 창창한 앞날이 보장된 여인이었다. 결혼도 그녀의 눈높이에 맞게 준수한 외모에 똑똑한 청년과 연이 맺어졌다. 아들과 딸을 낳아 누가 봐도 평범하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녀의 남편은 사상범으로 수감되더니 결혼 6년 만에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하루아침에 가장이 된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살아간다. 기구한 자신의 팔자가 서러웠다. 그래서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동안은 모든 것을 잊고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덟 살 난 아들의 몸 상태가 심상찮다. 급히 병원엘 데려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너무도 허무하게 죽고 만다.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잃고 나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 이제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딸아이와 함께 두 모녀는 오순도순 살아기기로 한다. 그렇게 귀한 딸아이는 서서히 나이가 들더니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서는 그녀를 떠나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되물림인지 그 사위마저 사상범으로 몰려 감옥에 가고 만다. 딸은 어머니의 처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차마 친정으로 가지 못하고 시댁이 있는 원주로 들어가고 만다. 그녀는 딸이 너무 걱정이 되어 낯선 원주로 찾아갔다. 그녀는 거기서 딸의 폭삭 삭은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머리는 듬성듬성 빠져 있고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느라 거칠게 변한 모습에 이게 정말 내 딸인가 싶었다. 그래서 모든 걸 정리하고 딸이 있는 원주 땅으로 들어와 딸을 보살피기로 했다. 그녀는 가만히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한 마음을 분출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모든 에너지를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아낸다. 소설 속에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한 여인을 등장시켜 자신의 아바타로 삼아 정말 줄기차게 써 내려갔다. 그 세월이 장장 25년이다. 대하소설 ‘토지’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주말을 맞아 대학원 원우들과 함께 원주 땅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왔다. 소설 속 무대는 하동땅이고 그녀의 고향은 통영인데 문학관은 엉뚱하게도 강원도 원주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서 그 의문이 풀렸다. 어떤 사람에겐 개인의 아픔이 상처가 되어 오래오래 상흔을 남기지만 어떤 사람에겐 그 상처가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귀한 문학적 소재가 되기도 하나 보다. 자신에게 닥친 삶의 시련들을 담담히 문학으로 승화시킨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눈 앞에 큰 산이 하나 버티고 선 느낌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다소 뜬금없이 제안했던 박경리 문학관 탐방 행사였다. 작년 코로나 이후 원우들끼리 대면할 기회도 없었지만 나 스스로 글쓰기 동아리를 하나 만들어 멋모르고 참여했던 원우들에게 매일 글쓰기 부담을 팍팍 주었던 터라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오프라인 행사 하나를 하고 싶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코로나 시국에 맞게 ‘따로 똑같이’라는 컨셉을 내세웠다. 오고 싶은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찾아오고 거기서 둘러보고 헤어지자는 취지였다. 비록 식당에선 대화에 심취해 주변의 항의를 받는 민망한 상황도 연출되었지만 그만큼 우리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목말랐었나 보다. 일부러 야외 카페를 찾아 인근 거리에서 세 명, 네 명씩 둘러앉아 나누었던 담소로 거의 세 시간이 흘러갔다. 그대로 가면 나중에 상경길이 힘들겠다 싶어 중간에 대화를 끊는 악역을 내가 담당했다. 공통된 관심사로 만난 이들에겐 언제나 마음이 활짝 열리는 것 같다. 멀리서 박경리 선생이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넉넉한 미소를 지을 것 같은 알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