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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장유유서(長幼有序)

by 장용범

최근 정치권에서 재미난 현상을 보게 된다. 보수야당에서 국회의원도 아닌 30대 인물이 당 대표 도전에 나섰는데 지지율이 가장 높은 기현상을 보이고 있어서다. 다른 후보자들 가운데는 5선 중진 의원들도 더러 있는데 30대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것이다. 이러다가 한국의 보수 정치권에서 30대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되는 게 아닌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더 재미난 건 집권당에서 무척 당황하고 있다 고 한다. 국회의장까지 지내신 분은 장유유서라는 말까지 언급할 정도로 현 상황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들의 지지를 등에 엎고 압승한 보수 야당이기에 그 바람을 계속 이어갈지 주목되고 있다. 모처럼 정치권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장유유서,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본 말이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사회적 순서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질서라는 것을 떠 올리면 몇 가지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다. 규칙적이다. 혼란도 없지만 큰 변화도 없다. 예측이 가능하다 등등이다. 지금의 정치권에 실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특이하게도 보수야당의 30대 당 대표 후보에게 지지를 몰아주고 있는 것 같다. 집권당에서 나온 장유유서라는 말에 대해 그 30대 후보는 이렇게 받아쳤다. "제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은 시험 과목에서 장유유서를 빼자는 것"이라며 "그게 시험 과목에 들어있으면 젊은 세대를 배제하고 시작한다"라고 했다.


질서와 순서에 대해 공정이라는 화두를 꺼내 든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20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그 젊은 후보는 나이 많고 경력 많은 정치인들에게 ‘공정한 경쟁’을 위해 당신들이 내려와서 나와 같은 위치에서 경쟁해 보자고 주문한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는 젊은 층을 위한 정치라면서 기성 정치세력에 그냥 액세서리로 20대 몇 명을 끼워 넣는 수준이었으나 이번에는 좀 다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이 상황들이 신선한 충격이다. 어느덧 나 도 기성세대가 되어 있고 젊은 세대들에게 꼰대로 분류되는 축에 속한다. 만일 젊은 그들이 나에게 공정을 내세워 경쟁하자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일단 불편할 것 같다. 경쟁이라는 것은 이겨야 결론이 나는 게임이고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 대 맞더라도 어른에게 맞는 것은 어느 정도 수용이 되지만 어린놈에게 맞는 것은 더 분하고 억울할 것 같아서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나이라는 것이 서열화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는 어린 상사와 일하는 것이 참 불편하다. 최근 정치권의 상황을 보며 장유유서라는 말이 사회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