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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지금 50대 남성이라면

by 장용범

‘패러사이트 싱글’

성인의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한 자녀들을 통칭해서 일컫는 일본의 신조어이다. 아니 신조어라 할 수도 없는데 이런 현상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이후 지속되는 현상 같다. 이게 일본만의 현상일까? 이제 한국에도 서서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우리에겐 ‘캥거루 족’으로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부모 의존형 생활행태는 이미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취업을 하더라도 독립을 하지는 않는다. 주거비용이나 기타 생활 편의성을 생각해 보면 독립을 하는 순간 삶의 질이 급락하는 수준이 되니 쉽게 독립을 못하는 것이다. 몇 가지 상상을 해본다.


먼저 20대인 자녀들의 시각에서 보았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업은 아직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진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졸업 후 2-3년 안에 취업하지 못하면 영영 취업 낭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불길한 이야기도 들려온다. 마음은 불안하지만 당장 먹고사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 부모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따순밥 먹고 빨래며 청소며 생활의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박하지가 않다. 취업이 안 되면 허드레 일이라도 해야 하지만 지금껏 부모에게 의존해서 공부만 하며 살다 보니 스스로 힘든 일은 기피하게 되었다. 좀 멋지고 좋아 보이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지만 여건은 녹녹지 않다.


50대인 엄마의 시각이다. 하나 또는 둘의 아이를 낳아 정말 열심으로 키웠다. 오직 공부만 하라며 손에 물도 못 묻히게 하고 학원이며 인강 등 만만치 않은 사교육비를 들였다. 아이는 이제 20대가 되었고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을 했지만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취업을 안 해서 독립을 못하는 것도 있지만 취업을 해도 독립을 안 한다. 나가면 고생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선뜻 내보내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다.


이제 50대인 아버지의 시선으로 본다. 은퇴가 다가온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노후자금으로 7억에서 10억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그동안 강제로 불입했던 국민연금이 그나마 위안이긴 하지만 수령을 하려면 퇴직 후 4-5년은 더 버텨야 한다. 그나마 퇴직금이나 이런저런 저축으로 부부만 산다면야 별 문제가 없겠으나 아직 독립을 않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고령의 부모님도 살아 계셔서 혹시 치매라도 걸리어 요양병원에라도 입원하는 날이면 그 병원비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걱정이 된다.


50대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시작됨에 따라 여러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고령의 부모들을 직접 모시지는 않지만 아직 살아 계시고 독립할 시기가 지났지만 자녀들은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현실이 이러할 때 50대 특히 남성 50대의 마음가짐에 대해 정리해 본다.

첫째, 조급해하지 말자.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부모의 치매나 자녀의 독립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져야 한다. 이럴 땐 차라리 결혼을 않는 자녀를 평생 데리고 산다고 여기는 것이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둘째, 가족이지만 각자의 인생이라 여기자.

아이들이 어릴 때는 보호가 필요하지만 성인이 되면 각자의 인생이다. 취업을 하고 안 하고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사실 그들의 문제이다. 내 자식이지만 남의 자식 같이 대하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의 가장 좋은 관계이다. 아내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이제는 그냥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친구는 각자 독립된 인격이다. 아내의 인생을 나에게 종속시키지 않도록 주의하자. 적어도 먹고 세탁하고 청소하는 것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자. 부부지만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너무 간섭하지 말자. 부모님에 대해서도 좀 다른 자세를 가지는 게 좋다. 고령으로 치매에 걸릴 수도 있고 두 분 중 한 분이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 일수도 있다. 그럴 때도 그분들의 인생이라 여기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으로 하자. 사회에서 남의 인생에 개입할 때 여러 문제가 생기듯이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이지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여기고 관계에서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셋째, 현명한 개인주의자가 되자.

이제 삶의 마지막 무대가 펼쳐진다. 그동안은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가족을 위한 회사를 위한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퇴를 한 이후까지 그런 삶을 살 이유는 없다. 나의 의무는 다 했다고 생각하자.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했고 나는 사회적으로 은퇴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고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게 현실인 걸 어떡하랴. 그냥 가진 것을 생각하고 만족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이제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은 좋은 삶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두고 산다. 그래도 된다. 하고 싶은 대로 하자.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가고 싶으면 가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자. 이제 삶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15년 정도 되려나. 나이 70세가 넘어서면 누가 봐도 노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간은 휙휙 날아갈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50대 이후엔 종교에 귀의하거나 철학자가 되어 보는 것도 좋다. 운 좋게도 영성을 가진 생명체로 세상에 태어났고 그동안 세속적 의무도 어느 정도 마무리했으니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 형의 조언을 받아들여 철학 공부를 찬찬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