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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인생 모멘텀이 달라지다

by 장용범

“안정된 자유”는 꽤 오랫동안 나의 모토로 삼아 왔던 말이었다. 시민활동가로 일하시는 어떤 분께서는 그건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며 비판받았던 가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안정과 자유라는 두 가치를 모두 추구하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가정을 가진 생활인으로서 안정을 외면한 채 나의 자유만 추구한다는 건 책임 방기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내가 처한 현실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정했었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아내에게 말했을 때 지극히 나 같은 발상이라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것도 변할 때가 되었나 보다. 지난 주말 라오 상하이에서 신선놀음을 하며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의 일이다. 이번 코로나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실을 버텨 나가고 있는 후배가 나의 ‘안정된 자유’를 듣고서 했던 한 마디가 어쩐지 목에 탁 걸리는 것 같아서다.


“선배님, 안정된 자유라는 말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에요. 어찌 보면 좀 슬픈 말 같기도 하네요. 한계가 있는 자유라는 뜻이잖아요. 거꾸로 하면 어때요? 자유 속의 안정” 그의 지나온 과거를 좀 알기에 충분히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후배가 안정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잘 나가던 대기업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모두가 우려하는 가운데 강남의 중국 찻집 2호점을 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가는 길은 남들 보기에 ‘저게 될까?’라는 길을 늘 선택하고 걸어갔었다.


우리 둘의 가치가 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안정된 자유’와 ‘자유 속의 안정’이라는 말로 잘 설명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후배의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추구했었던 ‘안정된 자유’라는 가치도 이제 용도 페기 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넘는 직장생활을 해 오며 가정과 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남들 모르게 꽤나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아내는 이기적인 나의 그런 성향들을 잘 받아 주었다. 직장생활에서도 어딘가에 메이는 게 싫어 은행업무보다는 보험 그중에도 영업관리를 지원했다.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는 돌아다니는 것을 즐겼고 왁자지껄한 파티 같은 행사를 주관했다. 한 마디로 직장생활을 참 재미나고 행복하게 했다. 감사한 일이고 그게 다 ‘안정된 자유’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선택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벗어던질 때가 된 것이다. 이제 안정된 자유는 더 이상 내가 추구할 가치가 아닌 것 같다. 왜 그럴까? 가족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나는 직장의 은퇴를 맞는다. 장차 여유로운 시간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유한한데 그중에서도 몸과 마음이 활동적인 상태에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많이 남지가 않았다. 75세 이후에 병원 신세를 안 지는 노인들이 드문 걸 보면 나이 들수록 건강도 장담 못한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간 안정 때문에 미루어 왔던 일들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후배의 말대로 ‘자유 속의 안정’으로 나의 모멘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도 이런 말을 남겼다. “상황이 달라지면 내 생각도 바뀝니다. 선생은 어떠신가요?”


주) 모멘텀(Momentum)이란 원래 물리학 용어로는 운동량, (움직이고 있는 물체 등의) 추진력 등을 말하며 기하학에서는 곡선 위의 한 점의 기울기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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