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인간관계에서 정을 끊는다는 진정한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은 한 질문자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스님(법륜)께 도움을 청하니 그만 정을 끊으라고 하신다. 스님의 법문을 접하고서 인간관계를 어찌해야 할지 정리가 좀 되는 것 같다.
누군가와 정을 끊는다는 말은 이제 남남이 되어 다시는 보지 않는다는 말인 줄 알았으나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지금껏 알았던 사람과 정을 끊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하면 그에 대한 미움, 증오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것은 정을 끊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부정적 감정으로 상대와 연결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정말 정을 끊은 사람이면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없는 상태에 머무는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어느 노인이 무거운 짐을 끌고 계단을 오른다 치자. 내가 여건이 되면 도와드리지만 갈 길이 바쁘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정을 끊은 상태는 지하철의 그 노인과 나의 관계 같은 것이다.
두 스님이 길을 가는데 소나기를 만났다. 눈 앞에 보니 개울이 있는데 물이 제법 불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미모의 여인이 개울을 건너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 한 스님이 등을 내어주고는 여인을 업고서 개울을 건네주었다. 이제 두 스님은 다시 길을 떠나는데 다른 한 스님이 여인을 업었던 스님에게 수행자로서 해선 안 될 일을 했다며 비난을 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여보게, 나에게는 그 여인이 없는데 자네에겐 아직도 그 여인이 남아 있네 그려”라고 했다.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관계는 죽고 못 사는 관계도 있지만 또 어떤 관계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 거리는 관계도 있다. 남을 미워하면 누가 괴로운가? 내가 괴롭다. 남을 좋아라 하면 누가 좋은가? 역시 내가 좋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상대가 고통을 받는 것도 아니요 그 미워하는 괴로움은 고스란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데 이는 바보 같은 짓 아닐까. 미워하지 않는 것이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좋고 싫고를 벗어나 매이지 않는 관계가 정을 끊은 관계임을 알게 된다.
내가 산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한다지만 산이나 꽃이 나를 좋아한다고 한 번이라도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유독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문제가 일어난다. 상대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이 만큼 좋아라 하니 너도 나에게 그만큼 돌려 달라는 기대감이다. 그게 충족이 안 되면 이제는 괴롭고 미운 감정이 일어난다. 이것은 주고받는 비즈니스 관계와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려거든 제대로 좋아해야겠다. 꽃을 보듯 산을 보듯 그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그냥 좋은 마음,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나의 마음, 그가 나를 좋아하고 말고는 그의 마음. 좋아하는 대상에게 나를 좋아해 달라는 기대함이 없을 때 우리는 제대로 좋아하는 마음을 누릴 수 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좋은 것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제대로 좋아하거나 아니면 정을 끊는 것으로 해야지 누군가를 미워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