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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무언가는 하며 산다

by 장용범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맥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세상에 났으면 무언가를 해야지 공수래공수거라며 초월한 듯 산다는 건 어쩐지 비겁한 도피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악착같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인생의 길이 얼마나 다양한데 내가 꼭 가야 할 길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약간 우울한 퇴근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2시간 반 가까이 이어진 토론에서 본사와 현장의 심한 괴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해당 부서의 역할로 치면 분명 맞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게 알맹이가 빠져있는 것 같아서다. 비 내리는 퇴근길 내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체 뭘까? 회사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수익도 안 나는 상품을 팔아서는 안 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은 그걸 몰라서 손해 보는 상품을 파는 것은 아닐 거다. 성과를 못 내는 영업채널은 폐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것도 맞는 얘기다. 하지만 그들이 왜 성과를 못 내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오직 결과만으로 재단을 하겠다면 그만큼 간단한 일도 없을 것이다. 서로 경쟁시켜 놓고 싸움에 진 놈은 죄다 도태시키면 된다. 그러면 과연 남을 놈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도태당한 놈들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내 상대편 진영에 붙어 그쪽의 칼을 들고 이 쪽으로 달려들게 된다. 그게 시장의 영업상황이다. 회사가 채널 중심의 전략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직접 마케팅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영업주체에 대한 개념이 없는 주장이다. 회사의 누가 어떻게 고객에게 다가선다는 얘기인가. 본사의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이 고객을 직접 만나 영업이라도 할 텐가. 이미 영업을 떠난 상황이고 전체적인 토론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직접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좀 무거웠다. 집에 도착할 무렵 내린 결론은 좀 허접하지만 이러하다. 각자는 옳았을지 몰라도 전체가 갈 방향은 아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큰 집에 주인공 가족들이 하나 둘 영입되면서 기존의 가정부를 내쫓았을 때의 장면이다. 어느 누구도 몰랐지만 그 집 지하에서는 가정부의 남자가 굶주림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세상에는 사람들이 몰랐다는 사실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이 생겨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모르는 일에는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은 경우가 있다. 어쩌면 나 역시 내 관점으로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사는 자산을 운용하는 부서도 있고 전산이 돌아가게 하는 부서도 있고 사옥을 관리하는 부서도 있다. 그중에서 나는 영업이라는 부서에 오랫동안 근무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정부를 내쫓으면 지하실의 한 남자가 굶어 죽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 갈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악착같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남이 알아주든 말든 무언가는 꾸준히 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생명의 본질인 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