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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정의도 변하는가?

by 장용범

점심을 먹고 주변 산책을 나갔다. 회사가 덕수궁 주변이라 가끔 근처를 한 바퀴 도는 편이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정동길을 걷는데 시청과 인접한 서울시립미술관을 앞을 지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정의도 변하는가?’


서울시립미술관은 오랫동안 대법원의 건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기록을 보니 대법원이 1995년도에 지금의 서초동으로 이전했다고 하니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은 이 곳 건물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지 추측해 보니 먼저 1979년의 10.26 사태가 생각났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었다. 김재규의 사형집행으로 사건은 끝이 났지만 나중에 신군부에 의해 판사와 변호인들이 협박당하며 재판이 유린되었다는 녹음테이프 증거가 나오기도 했다. 그 이후 80년대 5공 시절에는 여러 시국사건들로 민주투사들이 재판을 받았을 거다. 또 이 건물이 일제강점기인 1928년도 지어졌다 하니 당시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여기서 재판을 받고 투옥되거나 사형당했을 것인가.


이리 보면 정의라는 것도 절대적인 가치가 아님을 알게 된다. 가장 최근의 역사적 사건인 촛불 혁명도 조선 시대로 보면 민란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애매한 반란의 수괴를 잡아들여 남대문 앞에다 효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독립운동가들의 공소 이유가 치안유지법 위반이었다고 한다. 그리보면 법이라는 공동체의 최고 규범에도 절대적인 가치를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정의나 법은 누가 권력을 가졌냐에 따라 그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어갔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을 쉽게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에 대항하는 자는 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그 사회의 안정을 위해 격리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점심시간 산책을 겸한 짧은 시간이 정의를 생각하는 묵직한 시간으로 변한 느낌이다. 모두가 정의를 말하지만 서로 같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 정의를 말할 때면 이렇게 되물어야겠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그리고 그 정의는 정당한가? 이런 질문이 없다면 권력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꼭두각시처럼 끌려 다닐 것 같다.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그때 그때 달라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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