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20-30대의 풋풋한 시절 한 사무소에 근무했던 인연들이었다. 지금은 경북 봉화에 근무하고 있는 한 벗이 교육 참석차 서울로 온다기에 함께 했던 다른 동료와 보기로 했다. 직장인의 인연들이란 대부분 시절 인연들이기에 20년이 넘도록 만남이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다. 우리에게 이런 만남이 가능했던 것은 비슷한 젊은 나이에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했기 때문인가 싶다. 당시는 IMF 시절로 업무는 야근이 일상일 정도로 버거웠지만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사무소 분위기는 언제나 밝고 좋았다. 신혼의 새댁은 이제 지역 사무소를 이끄는 사무소장이 되었으니 우리를 거쳐간 세월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두 사람이 여성이다 보니 술자리보다는 차가 좋을 것 같아 중국 찻집 라오 상하이로 이끌었다. 그들로선 특이한 분위기였을 텐데 대화 중에 쉼 없이 찻물을 우려내야 하는 내 손길이 바빴다. 서울 살이와 시골 살이를 비교하며 대화 내내 깔깔거리며 웃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었다. 대화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은퇴를 앞둔 직원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부인과 함께 전원주택을 짓고 살면서 일어난 이야기였다. 하루는 근무시간에 부인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는데 집에 뱀이 들어와 기겁하는 내용이었다. 그 후 부인은 부부가 그토록 꿈꾸어 왔던 전원생활을 다 때려치우고는 다시 도시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결국 그 직원은 은퇴 시까지 넓은 전원주택에 혼자 살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부엌에서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렸을 뱀을 연상하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시골에 정착해 맑은 공기 마시며 텃밭 일구는 전원생활을 꿈꾼다. 나는 일찌감치 그런 생각을 접었는데 내 부모님의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두 분은 모두 도시에서 생활하신 분이지만 은퇴 즈음에 시골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하셨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는 아담한 마을 속의 집이었다. 문제는 접근성이었다. 집에서 차를 타고 거의 두 시간 걸리는 곳에 자리 잡은 곳이다 보니 일단 자주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 번 가기라도 하면 비어있던 시간 동안 마당 가득 잡초들이 올라와 반나절 풀을 베어야 했고 먼지 쌓인 집안 곳곳을 청소해야 했다. 그렇게 주말 한 나절을 익숙지 않은 노동으로 진을 빼고 나면 저녁에는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친다. 식사라도 준비할라치면 주위에 상점도 없는 곳이라 읍내까지 차를 타고 20분가량 다시 나가야 했다. 두 분은 손자 손녀들이 마당에서 뛰어놀고 물놀이하는 모습을 상상하셨는지 모르지만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주말마다 시골집에 내려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수년 후 주변 도시의 확장으로 손해보지 않고 그 집을 팔긴 했지만 두 분은 그 시골집으로 인해 마음고생이 꽤나 컸었던 것 같다. 시골집 관리 때문에 주말에 다른 일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니 오죽하셨을까 싶다.
도시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에 막연한 로망이 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 전원생활도 그러하다. 요즘은 생활 기반은 도시에 두고 원하는 곳에서 한두 달 살다오는 체류형 전원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것의 장점은 부동산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니 자금이 묶이지 않고 관리에 부담이 없다. 사는 곳에 얽매이지 않으니 국내에서도 살아보고 외국에도 살아보는 등 다양성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다 어느 곳이 정말 좋다면 그곳에 정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익숙한 도시생활을 떠나 전원생활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 무리가 따른다. 세상에는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꼭 좋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