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많다. 개중에는 정말 잘 난 사람도 있지만 별 것 없는데도 잘난 체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실제 잘난 사람일지라도 그가 만일 잘난 체하면 일단 거부감이 든다. 이건 거의 본능 수준인데 그 자체로 신기할 정도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도 원시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종족들에게도 누군가 잘난 체하면 따돌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학자들은 추정하기를 집단생활을 하는 인간의 특성상 잘난 체하는 사람은 전체의 결속을 저해하는 존재이므로 그런 성향을 수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간 본능이 진화된 것 같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잘나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또한 그것은 상당히 강한 욕구이다.
“잘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난 것 자체를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은 욕구가 있듯이, 모든 사람은 잘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잘나고 싶다고 잘나지는 게 아닙니다. 이걸 잘 알아서 잘나야 된다는 생각에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해요.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법륜 스님>
스스로를 돌아보면 상당히 강한 욕구 중 하나가 이 잘나고 싶은 욕구인 것 같다. 다른 말로 인정의 욕구라 할 것인데 어떤 때는 그것이 강렬한 에너지가 되어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잘 안되었을 때는 이런저런 괴로움이 생겨나기도 했었다. 내가 잘나고 싶다고 잘나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고 남이 나를 잘 봐주는 것도 아니라면 그런 욕구에 집착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게 아닐까. 무엇이든 집착을 하게 되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욕구의 대상에 대해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집착하게 되면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욕구를 버려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배 고플 때 음식에 대한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피곤할 때 자고 싶은 욕구 역시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적당히 먹었는데도 맛있다고 더 먹거나 충분히 잤음에도 일어나지 않고 더 누워있다 보면 꼭 끝이 좋지 않다. 잘나고 싶은 욕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욕구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집착하면 끝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만다. 잘나고 싶거나 잘 보이고 싶을 때면 이런 생각을 해보자.
‘지금 나는 잘나고 싶고 남에게 잘 보이고 싶구나. 그런데 내가 잘나고 싶다고 잘나지는 것도 아니고 잘 보이고 싶다고 나를 잘 봐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쓸데없이 헛심을 빼고 있지? 내가 스스로 주인 된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두고 그들에게 좌우되는 삶이 뭐 그리 대단할 것인가. 그냥 지금처럼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