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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준비만 하다 가는 게 인생

by 장용범

언젠가 내 어머님께서 ‘준비만 하다 가는 게 인생’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준비를 하며 산다. 출근 준비, 식사 준비, 회의 준비 같은 일상적인 것도 있지만 취업준비, 결혼 준비, 은퇴준비 등 시간이나 품이 많이 드는 것도 있다. 어쩌면 인생 자체가 준비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죽을 준비라는 말도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준비를 하는 건 좋은데 정작 만료 시점이 되면 또 다른 준비를 시작한다는 데 있다. 그토록 준비를 했다면 성과에 대해 누리는 시간도 필요한데 그게 잘 안 된다. 입시 준비를 통해 원하는 대학을 들어갔으면 졸업 후 취업을 위해 다시 준비 모드에 돌입하는 것과 같다. 이래서는 삶이 참 피곤해진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을 한다. 준비하지 않으면 이내 도태된다며 삶 자체를 항상 전투 모드로 유지하게끔 한다. 기업에서는 해마다 최고 경영자의 신년사를 발표한다. 직장생활 30년 동안 들었던 신년사들의 공통점은 올해는 어렵다는 말이었다. 단 한 번도 경영 여건이 좋다는 말은 없었다. 한결같이 어려운 여건이니 긴장하고 준비하자는 메시지만 있었다. 그러니 신년사라 해도 별 특이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준비라는 것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대비이다. 준비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는 준비로 인해 너무 많은 오늘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인생은 지금 누리는 이 순간이 하나 둘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인데도 오늘은 언제나 내일을 위한 준비의 의미만 있는 것 같다.


흔히들 철저한 준비를 한다, 완벽한 대비를 하겠다는 말을 한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함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다. 회사의 일이란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의 반복이지만 적어도 사람의 일은 좀 달라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감을 나중에 몰아서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준비의 최종 시점은 늘 미래에 있다 보니 몸은 여기에 마음은 저기에 가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수 만년 동안 형성된 인간의 진화 시스템은 지금의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미래를 걱정하게끔 설계되어 있긴 하다. 항상 미래를 걱정하고 오늘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채웠기에 문명이란 것도 생겨 났을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없지 않은데 마음이 늘 미래에 가 있는 사람은 긍정보다는 불안의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준비를 더 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미래에 도달했더라도 거기서 마음은 또 미래에 가 있고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이래서야 끝이 없다. 어쩌면 더 이상의 미래가 없는 임종의 순간이 되어서야 편안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그냥 몸과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고 살아보는 거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잠시라도 한 곳에 머무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지금 내가 보내는 작업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지금 나의 느낌을 놓치지 않는 연습이 곧 마음수행인 거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잘 사는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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