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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

by 장용범

“제가 살아보니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없는 경우가 많습디다. 오히려 길이 있는 곳에서 뜻을 찾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재찬 시인이 강연 중에 했던 말이다. 저 말이 저렇게 달리 다가올 수도 있구나 싶다. 뜻이 있는 곳은 대부분 남들과의 경쟁이 심한 곳이고 그 뜻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일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가다 보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나쁘지 않다. 어쩌면 내가 사는 인생의 큰 뜻은 어떤 우연으로 가게 된 이 길 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등산을 갔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근처의 바다로 가는데 계속 오르지 못한 산에다 미련을 두고 있다면 바보 같은 짓이다. 바다는 바다대로 의미 있는 풍경이 있다. 내가 오르지 못한 산에다 의미를 두니 실패한 것이지 지금 가고 있는 바다에다 의미를 두면 성공한 것이 된다. 산을 오르지 못해 실패한 게 아니라 내가 바다에 가면서 산에다 의미를 두니 실패한 것이다.


은행에서 대출업무를 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신용대출을 문의하는 전화를 받았는데 직업을 물으니 공무원이라고 했다. 필요서류로 재직증명서와 1년 치 소득이 나타난 연말정산서를 안내했다. 다음날 점잖은 두 분의 신사가 지점을 방문했다. 전화 문의를 했던 분이 대출을 받는다고 하니 옆의 동료도 받겠다기에 서류를 준비해 함께 왔다고 했다. 재직증명서를 보니 지방법원 판사들이었다. 대출을 처리하며 서류상에 나타난 판사들의 소득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당시 두 사람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생각보다 그리 높은 소득은 아니었다. 많은 대출을 취급했지만 판사에게 대출을 해 준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라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장면이다. 이런 그림을 그려본다. 누군가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계속 떨어져 은행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비슷한 연배의 판사 한 분이 대출을 받는데 소득 수준이 자신보다 못하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페북이나 인스타에 올라오는 글이나 사진들을 보면 다들 멋지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데 나만 힘겹고 초라하게 지내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대부분은 비슷하게들 산다. 어쩌면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더 열심히 광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쇼윈도 부부라는 말처럼 TV에선 그렇게 다정하고 좋아 보이더니 갑자기 파경이라는 소식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소식을 접하는 마음은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SNS에 가장 이상하다 여기는 것이 혼자 있고 싶다면서 멋진 배경으로 찍은 자신의 모습을 올리는 것을 볼 때이다. 끝없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규정짓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뜻을 두고 길을 찾는 방식도 있지만 길을 가면서 뜻을 찾는 방식도 있다. 몸은 바다로 가면서 마음이 산에 가 있다면 실패한 게 되지만 몸과 마음이 함께 가고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 된다. 인생살이에 오직 이 한 길이란 없는 것 같다. 성공과 실패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사실은 길을 가면서 뜻을 찾는 데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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