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이든이 되기를 바랐어요. 비록 우리에게 긍정적이라 해도 예측 불가한 인물에게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면 불안하지요.” 외교부에 근무하시는 지인에게 금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의견을 구했을 때 들은 얘기다.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변화가 크게 없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의 패턴에서 그렇게 벗어나지 않기에 사전에 대비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예측이 불가한 상황이면 리스크가 급증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대하는 사람의 감정과 행동이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하다면 늘 불안하고 피곤할 것 같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서 벗어나면 급격히 외로워진다고 한다. 재직 당시에는 꽤 많은 사람들과 이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연락이 뚝 끊어지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예측이 가능한 것은 좋은 것인가. 그런데 이것도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도해야 하는 시기에는 기존과는 다른 돌파력이 필요하다. 60-70년대 한국이 급속하게 성장하는 시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갯벌에 조선소를 짓는 무모함과 군사 작전하듯 포항제철소를 만들기도 한다. 그 시기에는 그런 예측 불가한 과감성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체제가 안정화되면 이제는 예측 가능한 운영방식이 필요하다. 이 때는 예측 가능하지 않으면 모든 게 리스크로 귀결되고 부정적 영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상황은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도 그러하다. 젊은 시절에는 예측 불가한 새로운 도전과 시도가 필요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지킬 것이 많아지면 예측 가능한 것을 선호하게 된다. 아무리 젊은 시절에 좌충우돌했어도 이제는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뭐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삶이 너무 단조롭고 재미가 좀 없을 것 같다. 100% 예측 가능한 인생을 누리기보다는 삶의 활력을 위해서라도 수용 가능한 범위의 은밀한 세계를 가지는 것이 좋아 보인다. 평소 평범해 보이던 직원에게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주말에는 사과농사를 짓기 위해 경북 영주에 내려가고 대학시절의 밴드 활동으로 드럼이 수준급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만의 음악실을 차려 지금도 드럼을 연주한다고도 했다. 이런 사람은 어쩐지 멋있어 보인다.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닌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예측가능성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너무 그러면 재미가 좀 없어진다. 가끔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실험과 도전은 삶을 좀 더 재밌고 윤택하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