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언젠 가는 끝이 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이게 끝인가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다른 회사는 모르겠으나 내가 다니는 회사의 11월은 내년도 인사작업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어제 올해의 인사 일정이 공지되었다. 이 문서가 시행되면 본격적인 정기 인사철에 접어든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문서다 보니 임원진의 교체 여부, 승진과 이동 등 인사 관련 다양한 말들이 회자되는 등 다소 들뜨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다. 더구나 올해는 부서 내 두 분이 퇴직 대상에 포함되다 보니 오랜 직장생활을 끝내는 이의 심적 동요를 곁에서 직접 보고 있다.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고 마음은 다소 불안해 보인다.
어제는 오후에 반휴를 내었다.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임의 연말 행사를 의논하기 위함이다. 각기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만 같은 관심사로 모인 분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행사장 답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세 시를 훌쩍 넘긴다. 나머지 체크리스트는 내가 정리하기로 하고 모두 헤어졌다. 시간도 애매해서 혼자 근처 카페에 들러 멍 때리는 시간을 좀 가지기로 했다. 한 2-3년 정도 된 것 같다. 직장 이외의 대외활동을 나의 시간에 포함시킨 것이. 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한 해의 끝자락에 다가 갈수록 익숙했던 선배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회사는 계속 이어가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가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당당했던 선배들의 어깨 처진 모습에서 그가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큰 쓸모없는 중년 남자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회사 분위기도 정시 퇴근으로 문화가 바뀌고 있어 이런저런 계기들로 퇴근 이후나 휴일에는 내가 하고 싶은 활동들로 채워갈 여유가 생긴 거다.
어제 카페에 혼자 앉아 나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가지를 끄적거려 보았다. “건강, 가정, 직장”이라고 적어보았다. 한참을 보다가 마지막 직장을 지워버리고 다른 단어를 넣어 본다. ‘소득’이라고. 나에겐 직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득이 중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