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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호미곶 바다와의 대화

by 장용범

오랜만에 바다를 보았다. 그것도 포항 호미곶에서 동해바다를 보았다.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바다와 대화를 나누었다.


* 바다: 친구, 오랜만이네. 그간 잘 지냈어?

* 나: 날 기억해?

* 바다: 그럼, 4년 전 겨울 자네는 노부부와 함께 찾아왔었지. 그날은 비가 제법 내려 나를 보러 올 사람들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하얀 승용차에 세 사람이 내리기에 인상 깊었어.

* 나: 그랬구나. 그분들은 부모님이셨어.

* 바다: 그리 보였어. 가뜩이나 겨울 바다의 바람이 찬데 비까지 내렸으니 자네가 두 분을 염려하는 모습이 역력했어.

* 나: 맞아. 사실 그 여행은 갑자기 이루어진 포항 여행이었지. 모처럼 휴가를 내어 본가에 들러 두 분에게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어 여행을 제안했더니 포항을 가고 싶어 하셨어.

* 바다: 부산 태종대 바다도 좋은데 왜 그러셨을까?

* 나: 아버님이 사업하실 때 포항을 많이 드나드셨는데 80세를 목전에 두고 한 번 가 보고 싶다시더군.

* 바다: 그랬구나. 부모님은 잘 지내시고?

* 나: 이제 두 분 다 80대 노인들이 되셨지. 건강은 괜찮으신데 아버님의 기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쓰이네.

* 바다: 노인들이 다들 그렇지. 오늘 모처럼 자네가 왔으니 내가 큰 파도로 선물해 주지. 어때?

* 나: 시원하고 참 좋네. 시선에 걸리는 것 없는 탁 트인 수평선도 좋고.

* 바다: 그런데 오늘도 일행들이 있으시네, 행색이 좀 특이들 하신 것 같은데 스님도 계시고 머리 긴 남자 분도 계신 걸 보니.

*나: 중국차 동호회에서 만난 분들이지. 어제 스님의 절이 있는 경주에 와서 밤늦게 차모임을 하고는 오늘은 바다 자네를 보러 왔네.

*바다: 잘 왔네. 요즘은 어찌 지내나?

*나: 이제 직장생활도 내년이면 끝이라 예전 같은 흥은 없는 것 같아.

*바다: 그렇겠지. 사람이 어떻게 계속 열정으로만 살 수 있겠나.

*나: 자네는 어찌 지냈나?

*바다: 나야 늘 한결같지. 매 순간 파도를 일으켜 호미곶으로 가져오지. 때로는 큰 파도 때로는 작은 파도지만 여하튼 계속 파도를 보내고 있어.

*나: 인생도 그런 것 같아. 이 파도가 지나가면 다른 파도가 늘 다가왔지 어느 순간도 파도가 없었던 적은 없었지. 다만 큰 파도냐 작은 파도냐의 문제였지.

*바다: 그래 바닷가의 바위처럼 그렇게 사는 게 좋아. 큰 파도는 큰 파도대로 작은 파도는 작은 파도 대로 그렇게 묵묵히 받아 보길 권해. 그러다 보면 바위와 파도가 어우러져 살아있는 멋진 바닷가의 경치가 되지. 그게 파도와 바위가 공존하는 지혜일지도 몰라. 은퇴 후엔 뭐 할 건가?

*나: 글쎄, 몇 가지 계획은 있지만 자네 말처럼 그때 오는 파도를 보며 결정해야겠네.

*바다: 잘 생각했네. 크든 작든 파도는 바다의 작은 일부에 불과해. 자네의 매 순간도 인생 전체로 보면 매 순간 지나가는 파도에 불과하지. 큰 파도든 작은 파도든 그냥 지나가게 마련일세.

*나: 고마워, 이제 가봐야겠네.

*바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다시 오게. 나는 언제나 여기서 파도를 일으키며 그 모습 그대로 있을 테니, 조심해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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