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로 보나 시간낭비인 짓을 하는데도 당신은 웃고 있군요.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파울로 코엘류>
옆에서 볼 때 참 답답해 보이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도 안 되고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올라가는 일도 아니고 누가 봐도 참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다. 작년 말쯤 희망레일 이사님을 만나 근황을 물었을 때 “저게 될까?” 싶은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2022년 2월부터 열릴 북경 동계올림픽에 참석할 남북한 응원단을 구성하는데 부산에서 북경까지 기차로 간다는 구상이었다. 응원열차는 중간중간에 정차하여 각 지역의 응원단을 싣고 휴전선을 넘어 북한 지역 응원단까지 태워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가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누군가로부터 내 상식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새로운 의견을 내기보다는 ‘아, 그러세요’ 라거나 그냥 ‘잘 되길 바란다’ 같은 빈말을 하게 된다.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 몇 달이 지나자 분위기가 심상찮게 변해갔다. 통일부 장관의 입에서 “북경 동계올림픽 공동 응원열차 구상”발표가 나오면서 북한지역의 철도 보수를 제안하기도 하고 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가 동참하는 모양새도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그것이 그냥 빈말이 아니었음을.
80년대 대학에 다닐 때도 그랬었다. 늘 학생들과 전경이 대치하고 있고 수시로 최루탄이 터져 교내는 눈물 콧물 흘리며 걸어야 할 일이 많았을 때도 “저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달라지니 뭔가가 서서히 되어 갔다. 대부분은 나와 같은 “저게 될까’라는 마음이었겠지만 누군가는 그 길을 갔던 사람이 있었다. 586세대라고 모두가 민주화 투사들은 아니다. 그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집회를 알리는 북소리에 뛰쳐나가는 이도 있었겠지만 학점과 취업준비를 하던 이들이 더 많은 현실이었다.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수긍되는 일들은 정해져 있다. 돈이 되고, 사회적 직위를 얻고,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 가끔 그와는 무관한 일들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누가 봐도 시간낭비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시간낭비라는 판단은 주로 다른 사람들이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일을 하며 웃고 있다면 그 일은 더 이상 시간낭비가 아닌 게 된다. 삶의 재미와 의미 부여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일찌기 경험 못했던 직장생활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한 마디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잘 찾아 먹고 있어서다. 주어지는 휴가는 다 쓰려하고 출근은 좀 빨리 하지만 퇴근은 정해진 시간에 한다. 회사의 일은 회사에서만 고민하고 벗어나면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는다. 대신 개인적으로 재미있어 보이는 여러 일들을 하는데 남들이 볼 때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일들이다. 돈도 안 되고 유명해지는 일도 아니며 그렇다고 알아주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냥 재미가 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재미난 일들을 하다 보니 그 일들이 점점 확장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보이고 한 발 더 들이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느낌이다. 예전의 나라면 지금 하는 일들이 정말 시간낭비로 보였을 것 같다. 하지만 코엘류의 말처럼 이 일을 하면서 콧노래와 엷은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분명 시간낭비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