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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다시 어린싹이 되었다

by 장용범

상대적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지역 문인회로부터 둘레길 걷기와 야외 시낭송 모임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공지를 받고 아침부터 준비해서 나갔다. 문인들 대부분이 연세들이 있으시다 보니 내가 젊은 축에 속한다는 건 알았지만 참석자들 가운데 막내라는 사실에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떠오르는 샛별이라고 언급할 때는 그냥 웃음이 났는데 직장에서 내 나이대를 보는 시선을 생각하니 그렇게 대조적일 수가 없었다.


시험에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있다. 특정 점수만 넘기면 합격이 되는 절대평가에 비해 상대평가는 자신이 아무리 잘해도 상대가 더 잘해버리면 탈락하는 경쟁 방식이다. 만일 자동차 운전면허를 소수의 인원만 선발하는 상대평가로 바꾸면 운전자라는 직업은 사회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는 선망의 직업군이 될 것 같다. 이 두 방식의 차이를 보면 절대평가가 자신과의 경쟁임에 비해 상대평가는 타인과의 경쟁이 된다. 시험에 임하는 심리도 절대 평가에 비해 상대 평가가 좀 더 불안한 면을 보인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늘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험뿐만 아니라 삶도 마찬가지인데 상대평가로 살게 되면 여러모로 좀 고달파지는 것 같다. 늘 상대를 의식해서 나를 무한으로 채근질 해야 하는데 좀 더 벌어야 하고, 좀 더 올라야 하고, 좀 더 많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지금 나의 수준과 상관없이 항상 시선은 바깥을 향해야 하기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이번에 G7 정상회의에 초대받은 한국의 대통령과 다른 강대국 정상들을 보며 각 국가에서는 최고 지위의 사람들이지만 저기서도 상대적인 우열을 가리겠구나 싶었다.


이리 보면 삶은 절대평가로 살 필요성이 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우위에 서려고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내가 정한 기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게 개인의 행복도를 위해서는 좀 더 좋아 보인다. 내색은 안 하지만 나는 경쟁이 참 불편하다. ‘싱 어게인’의 최종 우승을 했던 이승윤이라는 가수가 자신은 경쟁과 안 맞는 성격이라 오디션을 두 번은 못 하겠더라는 말에 내심 반가울 정도였다. 이런 성향 탓에 운동도 헬스나 걷기, 등산처럼 혼자서 하는 종목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축구 경기가 열려도 처음부터 경기를 보기보다는 이튿날 결과와 주요 장면만 보는 정도이니 경쟁을 싫어하는 정도가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내가 매일 실적으로 평가받는 영업부문에서 나름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나를 두고 상대평가를 하더라도 경기에 임하는 나는 절대평가를 할 수 있다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이야기도 마지막 순간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는 걸 보면 상대평가는 결과일 뿐이고 과정은 절대평가였음을 알 수 있다.


직장 은퇴를 앞둔 내가 지역 문인회에 가서 막내로 일을 맡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청년이 된 느낌도 든다. 많다 적다, 높다 낮다, 크다 작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세상은 비록 상대적인 것으로 평가하더라도 내가 평가하는 나는 절대평가를 내려 보자. 내 옆에 앉았던 시인은 오랜 기간 기업의 임원으로 재직했다는 소개를 하면서 인생을 경영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사는 방법은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역시 절대평가로 사는 게 맞다. 나의 기준을 내가 정한다. 그리고 달성 횟수가 많을수록 행복도는 높아질 테니 작고 만만한 기준들을 여럿 정해 하나씩 이루어 가자. 사람들은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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