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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크라스키노 포럼

by 장용범

서울-모스크바 상호 결연 30주년 ‘모스크바 영화제’, 안톤 체호프 독서회 진행, 러시아 인문강좌, 연해주 크라스키노 현지 방문 정책포럼 개최, 한-러 송년음악회 개최 등. 얼핏 보면 어느 국가기관에서 진행할 법한 사업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크라스키노 포럼’이라는 민간단체에서 올 하반기에 진행하고자 하는 사업들이다. 3년 전 한국의 대륙 진출을 꿈꾼다는 대륙 학교 과정을 수료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블라디보스토크 배낭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대륙에 대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대륙 학교 교육은 주로 한반도 통일과 대륙에 관한 콘텐츠로 이루어졌었는데 그중에서도 대륙과 러시아에 깊은 전문성을 가진 성공회대 김창진 교수의 강의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그 후 그분이 뜻을 함께 한 인사들과 포럼을 연다는 연락을 받고는 내친김에 창립멤버로 동참을 하게 되었다.


크라스키노는 러시아의 변방으로 중국, 북한의 접경지대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중국 훈춘과 북한 나진으로 들어가는 갈래길이 보이는 곳이다. 김창진 교수는 그곳 지명을 딴 포럼을 만들어 장차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처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적 포럼으로 키운다는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포럼’이란 원래 광장에서 대중이 함께 하는 토의를 뜻하지만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의 구속력이 약한 모임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집행부의 상당한 헌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 핵심에 김 교수가 있었다. 그분은 학생운동으로 대학시절을 보내고 같은 운동권 동지들이 정계로 진출할 때 모스크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던 현실참여형 학자셨다. 나에게는 연해주와 대륙을 본 감동이 김창진 교수의 포럼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올해 초에는 운영진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어제 열린 이사회에 첫 참석을 하게 되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인생 3막을 ‘글쓰기와 대륙’이라는 컨셉을 잡은 나에게는 ‘크라스키노 포럼’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여기서 만난 여러 북방 관련 인사들을 통해 그동안 한반도에 갇혀 지내던 나의 정신적 한계가 확장되는 느낌도 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은퇴를 앞둔 시점에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정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설렘이 더 크다. 지금의 내 나이가 50대 중반이다. 앞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시간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 참여적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시기가 된 것 같다. 오랜 기간 몸담은 직장에서는 곧 물러날 사람이 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새로운 영역에서 풋풋한 새내기로 활동할 마음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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