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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도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

by 장용범

프로젝트 관리를 할 때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라는 것이 있다. 중요 경로라는 뜻으로 이 과정에서 막히면 일이 더 이상 진척이 안 되어 전체 프로젝트에 영향도가 큰 과정을 말한다.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작은 단위의 작업들로 구성된 일이다. 마치 레고 조립품처럼 블럭 하나하나가 모여 자동차도 되고 비행기도 되는 작업들이다 보니 프로젝트는 한 작업만으로 완성되는 경우는 없고 여러 작업들이 모여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 그리보면 프로젝트 관리는 레고블럭을 하나씩 조립하는 과정 관리에 비유할 수 있다.


최근에 업무방법서를 하나 수정할 일이 생겼다. 작년에 새로운 조직을 하나 만들면서 이 분들의 업무 특성상 평가를 엄격히 할 필요성이 있어 만들었던 내용이었다. 문제는 업무방법서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것이 준법감시부의 합의라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작년에 제정할 때는 합의를 해주고선 올해 일부를 개정하려 하니 상위 인사규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인사규정은 인사부 소관이라 그 내용을 전달했더니 그건 또 노조 합의를 거쳐야 한다며 난색을 표한다. 결국 인사부에서 중재하기를 문제가 되고 있는 해당 업무방법서를 폐지하고 자체 지침으로 가지고 있으면 어떠냐고 하기에 내 입장에서는 결과만 같으면 되는 일이라 수용을 하기로 했다.


국회에서 법을 제정할 때도 그렇다. 건설이든 노동이든 각 분과위에서 법안을 만들어 본회의에서 의결을 하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위원회가 법사위원회이다. 그래서 법사위원장 자리는 여야가 서로 가져가려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자리이다. 특히 이번 21대 국회처럼 여당이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법사위마저 여당이 장악했다면 야당의 견제는 아무런 의미 없는 상황이 되기에 국회 개원 초기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그렇게 다투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도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는 일이란 게 오직 다른 부서에서 가져오는 일에 된다 안 된다 도장만 찍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려면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는 일방통행이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클수록 실질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자괴감이 드는 법이다. 그런 조직일수록 활력도 떨어지게 된다. 이번 일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다. 일이란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 왜 하는지를 알아야 모두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역시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