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누가 너에게 개새끼라고 하면 기분 나쁘냐?
B : 당연히 기분 나쁘죠.
A : 왜 기분이 나쁠까? 너는 개새끼가 아닌데.
두 정신과 의사들이 찍은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잠시 멈칫한 내용이다. 길을 가는데 어느 노숙자가 나에게 “야이, 개새끼야!”라고 해도 나는 별 미친놈 다 있네라며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장 상사가 결재판을 집어던지며 “야이, 개새끼야!”라고 하면 마음의 상처를 꽤나 받을 것 같다. 왜 그럴까? 같은 말인데 왜 다른 감정이 일어나는 걸까? 불교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붓다가 어느 부잣집 문 앞에서 걸식을 하려는데 집주인인 부자가 나와서는 붓다에게 아주 심한 욕을 해댔다.
붓다 : 당신 집에는 가끔 손님이 오십니까?
부자 : 오지.
붓다: 손님이 오면 음식도 대접하겠네요.
부자 : 하지.
붓다 : 그런데 그 손님이 차린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어떻게 하나요?
부자 : 내가 먹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
붓다 : 그렇군요. 저는 오늘 당신이 나에게 준 그 비난과 욕을 받지 않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들이 나에 대해 내리는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연예인들 중에는 악플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런데 위의 예화들을 통해 어떤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의 평가나 비난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안 하면 좋겠지만 그들이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영향을 받고 말고는 순전히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는 그의 평가이고 견해일 뿐이다. 누가 나를 무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것은 그의 견해지만 그 무시를 당하고 안 당하고는 나의 선택이 된다. 굳이 상대에게 나를 증명하려고 애쓸 일도 아니고 그를 미워할 일도 아니다.
많은 인간관계를 거치며 중년이 되어 보니 사람에 대한 하나의 관점이 섰다. 다른 사람은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나의 자녀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누군가를 바꾸겠다고 할 때 내 마음의 지옥은 시작된다.
옛날 어떤 임금이 핑크색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의 영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핑크색으로 바꾸라고 했다. 말도 안 되지만 임금의 명령이라 백성들의 옷이며 물건들이며 건물이며 죄다 핑크색으로 바꾸었다. 심지어는 풀과 나무까지 핑크색으로 칠했다. 그런데 단 하나 하늘만큼은 핑크색으로 바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하들은 어떤 현자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게 되었는데 그 현자는 임금에게 핑크색안경을 주라고 했다. 그리고 임금은 핑크색안경을 쓰고는 만족을 했다 한다.
세상이나 다른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처럼 나의 관점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어느 게 더 쉬울까? 당연히 나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는다. 연습이 좀 필요하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의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하나 일어나면 머릿속에서 그것을 반복 재생시키며 점점 키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어난 사건에 대해 우리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 화살은 맞을지언정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