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국장이 많이 서운해하세요. 서로의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만 두 분이 푸시는 게 어때요”
최근 업무상으로 갈등을 빚었던 터라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별도 자리를 가져보라는 말에는 좀 지켜보자고 했다. 대조적인 업무의 성격상 당분간 현 상황이 이어질 것 같고 그러면 언제든 다시 불편한 상황으로 내몰릴 것 같아서다. 상황을 알려준 후배에게는 이해는 하지만 입장이 다르다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인간관계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어제는 좋았다가 오늘은 흐리기도 하고, 죽고 못살아 결혼했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이것도 나이 탓인지 이제 누군가에게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잘 안 든다. 예전에는 어색한 관계가 몹시 불편해 어떡하든 먼저 다가가곤 했는데 이것도 점점 껍질이 단단해져 가는지 굳이 그러고 싶지가 않다.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다. 하지만 살면서 깨닫는 것은 굳이 그리 살지 않아도 살아지더라는 거다. 오히려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느라 힘을 빼느니 나의 모습 그대로를 수용해 주는 사람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좋게 포장된 이미지를 준다는 마음을 좀 내려두게 되는데 이게 그리 나쁘지가 않다. 오히려 그런데 쏟을 에너지를 나를 챙기는데 더 쓰고 있다. 그리고 좀 특이한 사람에 대해서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저럴 수도 있구나 참 다르네 정도로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지 굳이 엮이고 싶지가 않다.
언젠가 어머님께 사업을 하시는 막내 이모의 근황을 여쭌 적이 있다. 그때 의외의 답을 들었는데 연락을 안 한지 좀 되었다고 하셨다. 이유인즉 한 번은 돈이 급하다며 금방 갚겠다기에 빌려주었는데 차일피일 갚지 않아 아주 심하게 몰아붙여 기어이 받아 내셨다고 한다. 그런 후로 아예 연락을 않더라고 하신다. 어머님의 강한 성품을 알기에 그림이 대강 그려졌다.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으신지 다시 여쭈었다. 그때 하신 말씀이다. “인간은 자기가 받은 것은 잊기 쉽고 서운한 것은 오래 남지.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언니가 부모 역할을 하며 여섯 동생들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한 걸 생각하면 저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하지만 사람이 누군가에게 베푼 건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아. 안 그러면 내 맘이 불편하거든. 형제간에 돈거래하는 거 아니란 걸 알면서도 하도 죽는소리 하기에 빌려 주었더니 이리되었네. 그냥 너는 그 정도의 사람이구나 하고 마는 거지 내가 어쩌겠니. 저러다 다시 오면 받아주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역시 어머니는 정리의 달인이시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올 사람은 오고 떠날 사람은 떠나는 게 인간관계인 것 같다. 요즘 드는 생각은 사람이 오고 감에 너무 집착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