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이라는 한자의 뜻이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인데 아무리 봐도 적절한 글자인 것 같다. 매일 부대끼는 게 사람이지만 매일 어려운 게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회사가 금감원 감사를 받다 보니 신경이 다소 예민해 있었나 보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가 진행되다 보니 직원들 몇몇은 늘 빠져있는 상황에서 감사를 받고 있다. 감사는 항상 창과 방패의 한 판 겨루기와도 같다. 검사역이 창으로 찌르면 이 쪽에선 피하거나 방패로 적절히 방어해야 한다. 어제 감사장에서 자료 설명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기에 사람을 보내려 하니 담당 직원은 재택이었다. 하여 그나마 현황을 좀 아는 직원에게 올라가 소명을 하라고 했더니 자신의 일이 아닌 것 같다며 못 가겠다는 말을 했다. 이 말에 나는 완전 열이 뻗치고 말았다. 그 직원에게 큰 호통과 함께 한 바탕 쏟아내고 나니 주변이 살벌해진다. 결국 다른 사람을 올려 보내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직원을 다시 회의실로 불렀다. 평소 자신은 승진도 관심 없고 평정도 상관없으니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직원이었다. 데이터 분석이나 리포팅 능력은 뛰어난 편인데 태도가 너무 불성실해 주위에서 기피하는 직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감사기간이지 않은가. 그의 그런 모습을 대하니 정말 화가 났다. 면담을 통해 이성적 상황에서 다시 한번 질책했고 본인의 의견을 들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니 좀 허탈해지면서 은퇴하면 더 이상 저런 꼴을 안 봐도 되겠지 싶어 위안이 될 정도이다. 그리고는 여유를 되찾으니 나의 질책 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람을 질책할 때도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일단 질책을 하는 일과 사람을 분리해야 한다.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내 성질 한 번 부리고 마는 수준이지 정작 개선은 어렵다고 본다. 가장 좋은 것은 상대에게 애정을 가진 상태에서 하는 질책이다. 상대에게도 그 마음은 전달되는 것 같다. 그리고 질책과 잔소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잔소리는 나를 위한 것이고 질책은 상대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잔소리를 들으면 내용이 남아 있지 않지만 질책은 뭔가 큰 과제를 받은 느낌이 든다.
또한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당신은 매사에 왜 그 모양이야”는 질책이 아니다. 메시지가 없고 그냥 미운 감정만 전달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대로부터 부정적 감정을 전달받으면 반감이 생긴다. 하지만 질책을 받으면 반감보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질책은 주어를 “나”로 해서 구체적 사안을 전달하는 게 좋다. “나는 지금 당신의 이기심 때문에 정말 화가 난다. 내가 지금 당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화를 가장 나이스 하게 내는 방법은 이러하다. 지금 화가 올라오는구나를 깨닫고 그럼에도 화를 내야겠다는 단계를 하나 거치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목소리가 높고 화를 내면서도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는 느낌이 든다. 마치 배우가 화내는 연기를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은 화가 올라오자마자 그냥 질러 버린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분명 선택이란 것이 있는데 욱하는 감정 때문에 그 단계를 못 보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어제 내가 화를 냈던 수준은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여서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수준이다. 이것도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한 덕분인가 보다. 퇴근길에 그 직원을 불러 소주를 한 잔 먹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의 인간(人間)이라는 조어는 정말 잘 만든 글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