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예능 토크쇼로 네 명의 MC들이 초청된 3-4명의 출연진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식인데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청받은 출연자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말을 한다. 게다가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했더라도 재미없는 이야기면 모두 편집을 당하다 보니 좀 과장되게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저렇게 많이 하면 나중에 후회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나면 어딘지 기가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허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때로는 너무 많은 말을 했구나라는 후회도 든다. 그래서 말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가 되는 묘한 특성이 있는 것 같다.
말을 하는 목적은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뇌를 분석해 보니 쾌락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활성화되었다는 보고가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 특히 자기 자랑을 할 때면 절제가 안 되는 것이 이해도 된다. 이리 보면 말은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정서 공유의 기능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 강의기법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발성과 시선처리, 손의 적당한 위치, 강단에서의 이동과 청중에 대한 질문 등 다양한 내용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짬”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짬”이란 말을 잠시 멈추는 것이다. 강사가 너무 많은 말을 하면 청중은 이내 피로감을 느끼고 그 강의는 망치게 된다고 했다.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이해가 안 되었다. 강의는 내용 전달을 위한 것이고 강사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습을 하며 느낀 것은 확실히 말은 “짬”이 중요했다. 짬은 내 말이 전달되고 청중이 나의 말을 뇌에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 이렇게 짬을 활용한 강의는 강사에 대한 집중도가 상승하고 학습에도 효과적이었다. 다만 말을 하는 도중 짬의 길이는 스스로 체득하는 수밖에 없다. 짬은 너무 길어도 상대가 불편했다.
커뮤니케이션은 나와 상대방이 마주 보고 추는 춤과 같다고 한다. 한쪽이 너무 빠른 스텝을 밟아도 안되고 너무 느려서도 안 되는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행위이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짬과 상대에 대한 경청이다. 딸아이가 모 정당에서 진행하는 청년 정치 프로그램을 다녀와서는 들려준 말이 있다.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한 사람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독재자라는 것이다. 말은 나만 할 테니 너희들은 듣기만 해라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유창하지 않아 만남이나 모임을 꺼린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말하고 싶은 사람은 넘쳐나고 듣고 싶은 사람은 적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